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남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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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10면

내 취미는 독서다. 엄밀히 말하면 교열이 취미라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글귀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겠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오탈자나 비문이 있는 글귀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한다. 그것이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나면 감상이나 나중에 인용할 대목을 적겠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오탈자와 비문을 정리한다. 그리고 그것을 출판사에 보낸다. 악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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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메일을 출판사에 보내면서 감사 회신을 기대할 정도로 내가 순진하지는 않다. 다만 ‘확인해 보고 귀하의 지적이 옳다면 증쇄할 때 반영하겠다’ 정도의 회신을 기다리는 것도 순진한 것일까? 그렇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랑말랑하지 않다. 회신은 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도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말랑말랑하지 않다. 나는 출판사에 교열 메일 보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취미란 그런 것이다. 아무런 보상이 없다 해도 꾸준히, 즐겁게 하는 일이다. 나는 꾸준히, 즐겁게 책을 읽으며 오탈자와 비문을 찾고 그것을 정리해서 출판사에 보낸다. 가령 이렇게 말이다.

‘저는 귀사에서 출간한 『세상에서 가장 째째한 하케씨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은 독자입니다. 내용, 편집 모두 좋았습니다. 다만 오탈자와 어색한 문장이 가끔 눈에 들어와 즐거운 책읽기를 방해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제 눈에 띄었던 것들을 아래에 적어보았습니다. 참고하셔서 증쇄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째째한 상득씨 엎드림.’

드물지만 취미에 보상이 따르기도 한다. 드디어 출판사로부터 회신을 받았다.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았습니다. 확인해 보니 지적해 주신 부분은 오타가 맞습니다. 관심 기울여 주시고 연락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정말 기쁜 마음이네요. 지적해주신 부분은 다음 책이 나올 때 반드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게다가 담당 편집자가 보내온 회신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쩨쩨한 하케씨 이야기』의 담당 편집자입니다. 일단 송구스럽습니다. 책을 읽으시는 데 많이 방해가 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중한 지적, 2쇄에 꼭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관심과 충고 부탁 드립니다. 정말 송구스럽고, 감사합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보낸 메일에 심각한 오자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책 제목 『세상에서 가장 쩨쩨한 하케씨 이야기』의 ‘쩨쩨한’을 나는 ‘째째한’으로 썼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멋 부린다고 ‘세상에서 두 번째로 째째한’ 어쩌고 했으니.
들보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들보가 들어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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