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천수이볜 애태우는 리위안저 중앙연구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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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대만 총통 당선자 천수이볜(陳水扁)에게 중앙연구원장 리위안저(李遠哲)는 천사일까, 악마일까.

대만 최초의 노벨상(화학부문) 수상자인 그는 대만 대선 닷새 전인 지난 13일 陳당선자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박빙의 판세를 陳후보쪽으로 뒤집은 인물. 그만큼 李원장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존경심은 대단하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학자인 데다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 때문이다. 당시 쑹추위(宋楚瑜).롄잔(連戰)후보도 李원장을 끌어들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李원장은 결국 陳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막상 당선되고나자 李원장이 陳당선자의 애를 태우기 시작했다. 행정원장(내각총리)직 수락을 끝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陳당선자가 李원장에게 들이는 공은 대단하다. 陳당선자의 일정이 李원장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가능한 한 李원장을 많이 만나 행정원장직을 맡긴 뒤 조각(組閣)을 의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李원장은 "나는 행정원장의 최적임자가 아니다. 좋은 인재가 많이 있다" 며 계속 고사하고 있다.

陳당선자가 李원장에게 이렇게 집착하는 것은 그가 행정원장으로 최적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정치적 이유' 도 깔려 있다. 바로 첫 내각의 '입법원 비준 문제' 다.

현재 입법원은 전체 2백25석 가운데 국민당이 과반수인 1백23석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민진당은 3분의1에도 못미치는 70석에 불과하다.

만일 李원장을 행정원장으로 삼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내각을 구성한다면 국민당이 주도하는 입법원이 내각거부권(倒閣權)을 발동하기가 어려워진다. 李원장에 대한 국민적 신망 탓이다.

반면 李원장이 빠질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국민당이 친국민당 세력인 신당(11석)과 무소속을 규합해 의석 3분의2의 표결수를 확보한 뒤 陳총통 정부에 '첫 시련' 을 안길 가능성도 있다.

李원장이 행정원장직을 거부하는 이유는 "정치는 나와 맞지 않는다" 는 것. 그러나 복잡한 입법원의 생태, 민진당내 자리다툼, 陳총통과의 업무분장 등 학자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문제를 가능한 피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다.

타이베이〓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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