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지개 켜는 카자흐 … “지금이 투자할 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중견업체 엘드건설이 지난 5일 카자흐스탄 탈디쿠르간시에서 주택단지 기공식을 했다. 2013년까지 총 1800여 가구를 짓는 공사 현장에서 이 회사 직원들이 도면을 펼쳐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탈디쿠르간=안성식 기자]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인 알마티 시내 티미랴제프 거리의 터키 건설업체 공사 현장. 20층 가까이 골조가 올라갔지만 작업 인부는 찾아볼 수 없다. 멈춰선 타워크레인과 굴착기들이 현장을 지킬 뿐이다. 터키 업체가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알마티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 나라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석유를 비롯한 광물자원 개발에 힘입어 2000~2007년 매년 10% 안팎을 기록했던 이 나라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대로 고꾸라졌다. 은행이 부실화되면서 돈이 돌지 않는 데다 성장을 주도하던 부동산 경기가 냉각된 탓이다. 올해는 사정이 더 나빠져 상반기 성장률이 -2.3%를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지에 진출했던 외국 기업 상당수가 사업을 축소하거나 아예 철수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3000여 명에 달했던 교민이 현재 2000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연초부터 금융·건설·중소기업 등에 140억 달러의 지원금을 푼 데 힘입어 3분기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다. 최근 우랄산 원유가격이 배럴당 70달러대를 기록하는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회복된 것도 힘이 됐다. 카자흐스탄 중앙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 7월 실업자가 9만3000명으로 정점에 이른 뒤 9월엔 8만4000명으로 줄었다. 부동산 경기도 내리막길을 지나 서서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알마티 현지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HS-DGK의 노화승 대표는 “석 달 전만 해도 방 2개짜리 25~28평형 아파트의 월 임대료가 1000달러 정도였으나 요즘엔 1200달러까지 올랐다”며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는 기미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알마티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아블라이하나 거리. 이곳에 자리 잡은 춤(중앙백화점) 1층 휴대전화 매장은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 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손님이 붐볐다. 톨레비아우에조바 거리에 있는 대형 종합가전매장 ‘술팍’도 활기차 보였다. 이 매장 직원 예브게니는 “세계 각국의 가전제품을 팔고 있지만 비싼 한국의 삼성과 LG 제품이 단연 인기”라며 “우리 매장에선 경제위기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국민들도 지갑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의 카자흐스탄 투자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현지 법무법인 J&P의 유진 변호사는 “카자흐스탄 진출에 앞서 관련 법규를 알아보려는 기업이 늘어났다”며 “최근 4개월간 거의 없다시피 했던 한국 기업의 신규 상담 신청이 9월부터 하루 2~3건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대기업이 렌터카 사업 진출을 확정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한 발 앞서 투자를 결정한 기업도 있다. 한국의 중견업체 엘드건설은 지난 5일 알마티주의 주도인 탈디쿠르간시에서 ‘로자벨타운’ 주택단지 기공식을 했다. 2013년까지 4700억원을 들여 44만3000여㎡ 부지에 1800여 가구의 주택과 사무실·상가·병원·학교 등을 짓는 사업이다. 한태동 현장소장은 “돈을 빌리지 않고 자체 자금으로 초기 공사를 하겠다고 하자 시에서 시유지를 거의 무상으로 제공했다”며 “주택단지 인근에 주청사를 비롯해 중앙정부 기관들이 이전할 예정이어서 분양 걱정은 안 한다”고 자신했다.

카자흐스탄 교육학술부 산하 경제학연구소의 오라잘리 사브덴 소장은 “이곳에 진출한 한국 건설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호황의 정점에 투자했기 때문”이라며 “현지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는 전환점인 지금이야말로 투자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알마티(카자흐스탄)=차진용·유철종·염태정 기자,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김영진·김연규 교수,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