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현령 '생명의 강 22-형이상학을 위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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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달래를 캐는 손이 떨린다

그 얼굴이 너무 희고 보드랍고

그 살결이 너무 연해서

차마 칼을 댈 수는 없어

그 독특한 향기 때문일까

맨 처음 달래머리를 깨문 자는

누구였을까?

허구 많은 들 풀 중에

이 연약한 새 각시의 꼭지를 따서

끓는 된장국에 집어넣은 자는

- 박현령(62) '생명의 강 22-형이상학을 위한' 중

입 안에 봄이 가득하다. 달래같은 여자가 흰 손으로 얼음 풀린 땅을 캐고 있는가. 봄의 식욕을 향기로 무치던 어머니의 손도 보인다. 섬세한 감성으로 일상의 작은 일까지도 시로 저며내야 직성이 풀리는 박현령은 차마 칼을 댈 수 없는 달래머리를 들고 나와 그 순결을 아프게 감싸준다. 지금 저 눈 녹은 땅에는 매운 향기로 흰 손을 기다리는 달래머리가 있는 것을.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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