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란의 문화예술로 떠나는 여행 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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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부터 연극열전2의 두 번째 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는 ‘늘근도둑 이야기’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무엇이 관객의 마음을 빼앗았을까?

시사풍자코미디 연극의 스테디셀러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두 늙은 도둑이 있다. 이들은 인생 막장에서 마지막 한탕으로 노후대책을 세우자며 범행 장소를 찾는다. 그런데 그곳은 하필 높으신 ‘그분’의 미술관.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돼있는 그곳에서 작품의 가치를 모르는 두 늙은 도둑은 오로지 그 분의 금고만을 노린다. 금고를 앞에 두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끊임없이 옥신각신하던 두 도둑은 결국 경비에게 붙잡혀 무시무시한 장소로 향하게 된다. 있지도 않은 범행배후와 있을 수도 없는 사상적 배경을 밝히려는 강직한 수사관과 포복절도할 변명만 늘어놓는 어수룩한 두 늙은 도둑의 대결이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진다. 

시의적절하게 세상을 담아내다.

단순한 유머와 해프닝뿐이라면 이 작품은 여느 코미디와 별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늘근도둑 이야기는 기본 스토리를 바탕으로, 당대의 민감한 사건들을 긁어준다.

이 공연에선 ‘박연차 게이트’ ‘북측의 핵실험’ ‘허경영 신드롬’ 등 최신시사 현안을 뼈있는 웃음으로 전달하고 있다. 심각하고 어려운 정치·사회이슈를 통렬하게 스토리에 녹여 내 관객들의 호응이 매우 높은 편.

신문과 뉴스에서도 말하지 않는 뒷담화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며 함께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연장에 모인 사람은 배우와 관객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누구랄 것 없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배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웃고 박수를 치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극중인물이 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

좋은 재료와 노련한 솜씨가 빚어낸 최고의 맛

1989년 초연 이후 20년 동안 강신일·문성근·명계남·박광정·유오성 등 대스타들이 늘근도둑 이야기를 거쳤다.지금은 박철민·유형관·박길수·서현철·최덕문 등 베테랑 배우를 비롯해 총 15명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관객의 구미를 당기는 좋은 재료들을 최고의 요리사들이 맛깔스럽게 요리하기에 그 맛은 최고일 수밖에 없다.

늘근도둑 이야기는 분명 코미디다. 그럼에도 실컷 웃고 나온 관객들이 작품을 단순한 코미디만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그 안에 잡혀있는 뼈대를 보았기 때문이다. 통쾌한 풍자와 적절한 해학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에 대처하는 자세까지도 제시한다. 코미디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교훈적인 강연과 같은 시간들이기에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연극으로 거듭나고 있다.

공연예술기획 집단 문화 아이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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