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허물어 냅시다"…경북대 병원 등 민간동참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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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담장은 내것과 네것을 구분짓는 구조물.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높아져왔다.

이제 그것을 헐고 열린 마을을 만들자는 '담장 허물기운동' 이 대구의 시민운동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지난해 5월 처음 시작돼 이웃한 집.교회.병원 등으로 옮겨가며 확대되고 있다.

또 ㈜우방 정화타운처럼 처음부터 담장 대신 자연석이나 나무.꽃들로 조경하는 아파트나 주택들도 요즘 지역에서 등장하고 있다.

◇ 담장 허물기〓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는 최근 20일간 올 상반기 담장 허물기사업 신청을 받았다.

총 59곳 중 민간이 36곳을 신청, 동사무소.경찰서.학교 등 공공부문을 앞질렀다.

시민회의 관계자는 "예상 밖으로 시민들의 문의와 방문이 줄을 이어 시예산 범위에서 서둘러 접수를 마감했다" 고 말했다.

올해 민간부문에서 담장을 허물고 대신 작은 공원으로 꾸미겠다고 나선 곳은 주택.아파트 8곳, 기업체.병원.가게 등 7곳, 유치원 8곳 등이다. 이곳엔 시예산 3백만원과 담장철거에 따른 폐기물을 처리하고 조경전문가들의 낡瓦?자문 등이 지원된다.

전체 62곳 중 구청.동사무소 등 공공부문이 48곳을 차지한 지난해 실적에 비하면 담장 허물기가 이제 완전히 시민들에게로 바톤이 넘어간 셈이다. 대구의 담장허물기는 1백23개 시민단체.기관들과 대구시가 함께 하는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의 중점사업이다.

지난해 5월 스스로 자기집 담을 허물고 나선 金경민 (39.대구YMCA)시민회의 실무위원이 시민운동으로 벌여나갈 것을 제안하면서부터다.

金씨는 "보수적이고 다소 폐쇄적인 지역 분위기를 개방적으로 바꿔 이웃과 소통하며 '사람냄새' 가 나는 마을로 꾸미는데 촛점을 맞췄다" 고 말했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특히 큰 대구의 기후환경을 극복하는 녹화사업의 하나로 삼자는 뜻도 덧붙여졌다.

그래서 담을 허물고 그 자리에 나무와 꽃을 심어, 일부러 만들자면 땅값 때문에 엄청난 돈이 드는 거리의 소공원으로 가꾸기로 했다.

지난 한햇동안 62곳의 담장 3.6㎞가 자취를 감췄으며 올해는 그 2배정도를 목표로 한다.

지난해 7월 담을 허물고 거리공원을 조성한 경북대병원의 경우 특히 파급효과가 컸다. 담장이 높았을 땐 '갇힌' 느낌을 받았던 환자들이 담장 허물기를 반기고 나오자 9월에는 동산병원, 12월에는 파티마병원 등으로 번져갔다.

올해는 경찰서와 경찰서장 자택까지 담장 허물기에 가세할 태세다.

◇ 문제점〓일반주택의 경우 방범과 사생활 보호가 걸림돌이다.

막상 담을 헌 주택에서는 "오히려 도둑 걱정을 모르고 지낸다" 는 반응이지만 선뜻 나서기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올해 담 허물기를 신청한 金모(남구 대명9동)씨는 "허물고 난 뒤 불안해지면 방범 서비스에 가입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담이 허물어진 자리에 들어선 거리 소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공중의식도 문제.

李모씨(수성구 만촌동)는 "함부로 버리고 가는 쓰레기가 너무 많다" 며 "담장을 허무는 것도 좋지만 키 낮은 나무 울타리 등 담장 낮추기가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고 말했다.

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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