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7번째 시집 준비하는 김혜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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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하철 명동역에서 남산쪽으로 난 골목길을 오르다보면 초록색 유리빌딩이 눈길을 붙잡는다. 어수선하고 낡은 거리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깔끔하고 세련된 빌딩은 서울예술대학의 예술관이며, 그 꼭대기 4층에 시인 김혜순(45.문예창작과)교수의 방이 있다.

거리의 어수선함이나 1층 로비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멀어지며 시인의 연구실에 이른다. 연구실 입구를 지키는 조교 여학생의 낮은 목소리, 조용한 몸동작이 방 주인의 빈틈없는 장악력을 짐작케 한다.

김씨의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이 최근 월간 '현대시' 에서 제정한 '현대시 작품상' 초대 수상작으로 뽑힌 얘기부터 시작했다.

시인은 "생각지도 않았던 상을 받았다" 며 환하게 웃는다. 시종 웃음 띈 얼굴이지만 엷은 안경테 속으로 비치는 눈빛은 작은 일상의 움직임도 놓치지않는 섬세함과 날카로움을 느끼게 한다.

3평도 채 안되는 연구실은 책장.그림.컴퓨터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바닥에 기대어진 그림은 '뉴욕에서 활동중인 '화가 김진숙씨가 1988년 김씨의 시를 읽고 상상해 그린 인물화. 시인을 닮은 구석은 전혀 없는데도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간 써온 '시의 이미지, 자유분방하면서 그로테스크하고 원초적인 느낌이다.

김씨의 방은 번잡하다. 학생들이 습작을 들고 코멘트를 얻고자 들락거리기 때문. 시의 산실(産室)인 동시에 시인의 산실인 셈이다.

"나처럼 시를 쓰라고 가르치진 않아요. 다만 꼼꼼히 읽고 시적인 언술(言述)이 아닌 것을 지적해주죠. 그러면 학생들이 알아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갑니다. "

시는 불교의 선(禪)과 같아 문득 깨달음이 중요하다' 는 생각을 가진 시인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시적 상상력을 혹시나 다치게 할까봐 조심조심 길을 일러주는 안내자임을 자처한다.

자신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강의를 하다가도, 차를 마시다가도 시상(詩想)이 불쑥 떠오르면 머리 한쪽에 담아두고 숙성시키죠. 제 머리속에는 둥지가 여럿 있어요. 그러다가 그것들이 넘치면 한꺼번에 몇 편의 시를 쏟아내지요. "

시인은 지난 3년간 쏟아낸 60여 편의 시를 모아 올 여름쯤 7번째 시집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에 앞서 19일 베르텔스만(Bertelsmann)클럽 초청으로 독일을 방문, 한국문학작품 낭독회에 참가한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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