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광장] 모두가 '공주'되는 3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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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러시아의 겨울은 길다. 5월까지도 눈 오는 날이 있을 정도다. 따라서 봄의 시작은 늘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러시아의 봄은 세계 여성의 날인 8일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날이 되면 러시아와 옛소련 전역엔 성장(盛裝)한 여성들로 넘쳐난다. 모스크바는 도시 전체가 꽃을 피운 듯하다. 여성들은 겨우내 입었던 두터운 모피와 외투를 벗어던지고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한 뒤 거리를 누빈다.

남성들은 어디서나 여성들을 떠받든다. 옛소련 시절 러시아의 문인들은 이날을 러시아의 여인들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날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러시아 남성들은 자신과 관계있는 여인들, 어머니.부인.딸이나 집안의 여자 친척, 직장의 동료 등에게 선물과 꽃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고 화해의 기회를 잡기도 한다.

반대로 여성에게 꽃이나 선물 등을 선사하지 않는 남자는 야만인으로 낙인찍혀 사람취급도 못받는다. 이 때문에 향수.속옷 등 여성용품과 샴페인 등 축제용품이 이날을 전후해 가장 많이 팔린다. 이날 하루에만 팔려나가는 꽃이 3억송이라고 한다.

유럽과 러시아의 상인들이 이날을 놓칠 리 없다. 러시아의 레스토랑.공연장엔 여성들을 위한 각종 축제와 기념식으로 발디딜 틈이 없고 시내의 꽃집과 선물가게는 1년 중 매상을 가장 많이 올린다.

세계 최고의 꽃 수출국인 네덜란드 등 유럽의 꽃시장 상인들은 러시아 바이어들의 요구에 맞추느라 전세기를 띄울 정도다.

심지어 샤넬.이브 생 로랑 등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들도 이 무렵 러시아에서 얼마나 팔리는지로 신상품의 성공 여부를 가늠해볼 정도다. 러시아 상인도 이날의 경기가 좋으면 1년 내내 경기가 좋을 것으로 기대한다.

러시아 여론조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여성들이 가장 기다리는 기념일은 여성의 날이다.

여성들은 이날 주변 남성들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긴 겨울의 움츠림을 벗어버리고 활기찬 1년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권한대행도 정부 청사의 여직원들을 위한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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