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핵 논란, 전화위복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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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여건 때문에 같은 일이라도 국제사회는 민감하게 반응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북한은 지난 10여년간 핵문제로 국제사회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아왔고, 우리나라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 의혹으로 일종의 원죄를 짊어지고 있는 상태다.

2000년 한국원자력연구소(원연)의 일부 연구원이 행한 농축도 10%에 해당하는 0.2g의 우라늄 분리실험이 최근 국내외적으로 강진을 일으켰고 아직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원연의 우라늄 분리실험은 지금 국제적 비판의 시험대에 올라 있고 사태의 진전에 관해 낙관과 불안이 교착되는 듯하다. 원연의 실험문제가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우리의 핵 개발 의지라든가 능력 여부에 관한 것은 일단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를 빌미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심각한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자원 빈국이자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가 절대적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발전 분야에서나마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를 완화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원전에 대한 의존 비율을 높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원전의 건설.운영에서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한 핵연료의 국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며, 이를 고려할 때 원연의 실험으로 국제사회에서 발목이 잡힐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원자력산업은 핵연료주기 전반에 걸쳐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개된 자료를 종합해 볼 때 원연의 우라늄 분리실험은 일부 연구원의 학문적 호기심에 따른 일회적.우발적 성격을 지닌 실험에 불과할 뿐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반복적.계획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이 결코 따뜻한 것 같지는 않다.

이제 우리는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 우선 원연의 실험이 침소봉대돼 국제사회에 핵 의혹으로 비화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고, 따라서 여전히 미심쩍어 하는 국제사회의 의혹이 신속하고도 완벽하게 해소돼야 한다. 이러한 의혹이 제거되지 못할 경우 국제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리나라의 원자력산업은 고사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부는 국제사회를 상대로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핵 사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미국을 포함해 중국.러시아.일본 같은 주변국은 물론 프랑스.영국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을 상대로 전방위 설득 외교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원연의 실험을 부정적 측면만으로 몰아가 우리의 발목을 잡으려는 미묘한 국제적 저류가 있음도 정부는 염두에 둬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이 순수한 연구 목적의 실험에 대해서조차 유감을 표명한 사실, 미국의 뉴욕 타임스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빗대어 "한국의 우라늄 농축실험이 70년대 한국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시도했던 사례와 유사하다"는 비약적 논조로 보도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핵 비확산체제는 그것이 비록 불평등한 측면이 있지만 핵 확산을 방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사실이기에 우리는 더 이상 국제사회에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내부의 틀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은 오랜 세월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핵실험을 제외한 농축.재처리 등 얻을 것을 다 얻은 나라다. 우리나라도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국가적 외교 역량을 집중해 핵 투명성 제고와 함께 원자력의 연구.개발 범위를 핵주기 전반에 걸쳐 공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국내외적 인프라를 구축해야겠다.

함철훈 가톨릭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