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경원 칼럼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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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여름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더운 계절이었다. 그러나 자연은 계절의 순서를 지킨다. 벌써 아침저녁에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여름의 종언을 고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사람들은 '철없는' 아이들처럼 계속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면서 무엇 때문인지 그들만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당장 급하지 않은 문제 매달려

당선된 지 며칠 안 되는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탄핵을 면한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소위 '행정수도'를 반드시 옮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과거 일제의 식민 통치 시대에 친일한 사람들을 골라내는 이른바 친일진상 규명을 국회가 크게 벌이자고 제안하고 나왔다.

현 정권의 어젠다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나라가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혼란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현 정권의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그렇게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되는 그런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또는 어떤 철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 현실성이 명백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해결이 시급한 문제, 그러니까 시급히 해결하지 못하면 엄청난 구체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북한 핵문제와 우리의 경제 문제가 바로 그런 문제다.

북핵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하기가 어려워지고 그 결과는 점점 더 큰 비극을 낳을 것이다. 앞으로 미 대통령 선거 이후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된다면 미국은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건 간에 북한에 대해 강압적 정책 수단을 적용하는 가능성을 고려하게 될 것이 분명한데, 그럴 경우 우리 정부는 매우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은 틀림없다. 따라서 이 문제는 그때 가서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식의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는 소극적인 정책 스타일을 버리고 처음부터 상황을 주도해 나가는 정책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만일 우리 스스로 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6자회담이라는 틀 속에서 무사안일하게 시간만 보내는 수동적인 자세를 즐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제는 안보다. 경제가 약하면, 안보도 약해진다. 그리고 경제가 튼튼하게 되면 안보도 튼튼하게 된다. 국가의 성공 여부도 그 나라의 경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국가로 널리 인정돼 왔다.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의 성장 모멘텀을 모두 상실하고 앞으로 만일 고도성장의 동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당기간 저개발 국가로 남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경제는 성장의 불꽃이 모두 타버리고 차가운 재만 남게 되면, 다시 뜨거운 고도성장의 불을 붙이기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잃어버리기 전에 우리는 그 무슨 다른 일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불길을 살려 놓는 일에 모든 있는 힘을 다 부어 넣어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 불길 빨리 살려야

서울에 주재하는 어느 선진국 대사는 한국이 경제를 살리려면 상당한 규모의 자본이 필요할 텐데 재원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수도 이전을 지금 이 시기에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또 다른 대사는 한국이 과거사 규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 같은데 미래를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과연 그렇게 시급한 일들인지, 아니면 정말 시급한 일들을 제쳐놓고 앞으로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도 좋을 문제들을 성급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경원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