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과의 전쟁' 선포] 선관위도 묘책없어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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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선관위가 고민이다.

지역감정을 일으키는 득표전략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고 판단하지만 제동을 걸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선거 현장의 심판인 선관위가 나서서 막으라는 여론의 요구 탓에 실무자들은 이것저것 따져보지만 뾰족한 제재 카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감정 발언을 선거법 위반으로 걸 수도 없는데다 지역감정 조장행위를 묶을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지난번 선거법 개정 협상 때 선관위는 '후보의 출신지.연고를 홍보물에 넣어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내는 행위를 못하게 하자' 는 아이디어를 정치권에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6일 선관위가 한 일은 지역감정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여야 각당 대표에게 보낸 정도다. 그러나 "이런 경고 메시지로 효력이 있을지 의문" 이라는 게 선관위 관계자들의 고백이다.

이용훈(李容勳)중앙선관위원장은 "(법정)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벌써부터 지역감정을 건드려 선거를 치르려는 징후가 농후하고, 일부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 난감하다" 고 말했다.

선관위는 고민 끝에 이날 선거관리자문위원 회의를 열어 해결 아이디어를 구했다. 자문위원들은 언론계.학계 인사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자문위원 회의에서도 "지역감정 선거는 망국적 행태" 라고 비판했지만 뚜렷한 해법(解法)을 내놓지 못했다.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회의에선 지역감정을 촉발한 정당에 대해 엄중경고 등 강경 대응으로 맞서야 한다는 '강한 선관위론' 이 우세했다.

송진혁(宋鎭赫)중앙일보 논설고문은 "선관위가 정부와 정당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선거활동이 없도록 적극적이고 맹렬한 기상을 보일 필요가 있다" 고 강조했다.

유자효(柳子孝)SBS 라디오센터장도 "의도적으로 지역감정을 촉발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정당 대표 앞으로 경고서한을 보내는 등 강경조치를 취하라" 고 말했다. 양근승(梁根承)KBS 시나리오 작가는 "지역주의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법으로 막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고 제안했다.

지역감정 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뜨거울 때 법제화 문제를 공론에 부치자는 의견도 있었다.

'묵살론' 도 나왔다. 지역감정을 말기 암환자에 비유한 추성춘(秋成春)MBC 해설주간은 "배를 열었는데 수술이 불가능하면 덮는 수밖에 없다" 며 "해결책이 없는데 자꾸 건드리면 악화만 될 뿐" 이라고 지적했다.

秋주간은 "신문.방송협회와 선관위가 자율 협의해 지역감정 발언은 보도하지 않는 방법으로 우선 급한 불을 끄고 봐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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