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런 신종 관권건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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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이 각종 시혜 정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최근 1주일 사이에만도 군 인터넷 면회소 설치를 비롯해 중고차 세율 인하, 전국 1백개 달동네 정주(定住) 여건 개선비 7백80억원 지원, 011 이동전화요금 15% 인하 등 귀에 솔깃한 내용들을 쏟아내고 있다. 또 어제는 장애인 수당 인상을 포함한 장애인 복지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앞으로 무슨 선심 공약이 나올지 모르지만 이런 것들이 소위 '여당 프리미엄' 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되는 선거 풍토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면 선거 여부를 가릴 것 없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내용이나 발표 주체 등을 따져보면 상당한 문제가 드러난다. 분명히 정부 또는 제3자의 업무인데 '당정협의' 를 빌미로 당이 나서는 예가 허다하다.

"선심성 논란을 빚을 수 있는 행정이나 예산의 조기 집행 등을 자제하라" 는 중앙선관위의 정부에 대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숱한 선심성 정책이 나오고 있다.

엊그제 이인제(李仁濟)민주당 선대위원장은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습 준비물 구입을 예산에서 지원하겠다고 했다.

선대위원장이 이런 공약을 남발해도 되나. 앞에 예시한 중고차 세율이나 이동전화요금 인하 같은 대책을 어째서 당이나 선대위원장 이름으로 발표하는지 이 또한 의문이다.

특히 각종 발표 대부분이 당 선거대책위 회의 결과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은 스스로 '선거용' 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법정 선거운동 기간이 아직 20여일도 넘게 남은 상태에서 공공연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 예산과 관련되는 공약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권(官權)선거의 오해 소지를 남기게 된다.

여당은 이런 것들이 국정의 연속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신종(新種) 관권선거' 의혹은 011 이동전화요금 인하 발표 과정에서 보다 분명하게 읽힌다.

전화요금 인하 문제는 이유야 어쨌든 사업 주체인 SK가 나설 일이다. 그런데 정작 발표는 민주당 선거대책위가 끝난 뒤 당에서 가로채고 나섰다.

인가권을 가진 정보통신부가 나섰더라도 이상한데 당이 앞장선 것이다. 게다가 발표장에는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남궁석 전 정통부장관과 곽치영 전 사장까지 배석했다.

SK는 당의 발표에 따라 요금 인하서를 작성해 정통부에 제출하는 일만 담당한 것이다. 이 해괴한 과정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과연 이번 발표가 선거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나. 그러잖아도 앞뒤 안가리는 각당과 후보들로 인해 돈 선거, 폭로.고발전의 혼탁 양상이 극에 달하리라는 우려가 높다.

이런 마당에 여당이 모범은 못보일 망정 교묘한 방법으로 신종 관권선거를 기도한다면 총선 후유증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오해를 살 행태는 극력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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