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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으면 의자, 빗모양에 이쑤시개까지 … 직업이 보여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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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22면

평범한 명함 크기는 대개 가로*세로가 90*50㎜다. 이보다 다소 작은 86*52㎜도 사용된다. 여기에 소속 조직의 이름과 자신의 성명ㆍ직위ㆍ연락처(주소, 전화ㆍ팩스번호, e-메일), 회사 로고와 홈페이지 정도를 적어 넣는다. 표기문자는 대개 한글ㆍ한자ㆍ알파벳이다. 이것이 표준형 명함이다. 한국인들은 표준형 명함을 선호한다. 서울 양천구의 스토리명함 관계자는 “1000명 중 두세 명이 색다른 명함을 찾고 나머지는 표준형을 원한다”며 “튀는 명함으로 첫인상을 망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공서나 기업체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글씨체를 바꾸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한다.

명함의 진화

금·은·동에 플라스틱, 재료도 다양
과거에는 표준형 선호가 더 심했다. 그렇다고 유행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때는 사진을 넣는 것이 유행이었다. 정치인이나 영업직 종사자들이 얼굴을 알리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는 사진 명함은 그러나 ‘흉하다’는 평판과 함께 시들해졌다. 다만 사진 대신 캐리커처를 넣은 명함은 아직 인기가 여전하다. 요즘엔 다소 비싼 명함을 만드는 게 유행이다. 대표적인 것이 카드 명함이다. 플라스틱류의 소재로 금빛ㆍ은빛ㆍ투명ㆍ반투명 등 여러 빛깔로 만들 수 있다. 장당 500원 이상이 들어간다.

입체로 변형되는 명함도 있다. 가구점 종사자①와 미용실 직원의 명함②은 입체감을 줬다. 가구점 명함은 의자 모양으로 변형할 수 있다. 미용실 명함은 빗 모양이다. 빗 모양과 비슷한 음식점의 이쑤시개 명함③도 매우 효과적이다. 이쑤시개 하나를 분리해 명함에 부착된 거울을 보며 이를 청소할 수 있다. 확대경 기능을 넣은 명함도 있다. 물에 넣으면 싹이 자라는 조경회사의 명함④도 인상적이다. 이런 명함을 건네면 명함 속 인물이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재미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효과도 있다. 이혼전문 변호사의 명함⑤은 둘로 잘라낼 수 있다. 그렇지만 양분한 뒤 보관이 쉽지 않아 실용성은 떨어진다. 입체감을 주기 위해 종이 등 명함 소재에 구멍을 뚫은 요가학원의 명함⑥과 음악ㆍ스튜디오 관계자의 명함⑦도 눈길을 끈다.

명함의 고정 관념인 네모 평면형을 아예 탈피한 것도 있다. 완구회사의 명함은 사람 인형과 같은 모양이다. 풍선 모양의 명함은 ‘호흡’을 강조한 것이다. 밴드ㆍ집게ㆍ땅콩ㆍ낙엽 등도 명함의 소재로 이용된다. 맛과 냄새가 있는 육포로 만든 명함⑧도 있다. 같은 사각형이더라도 종이가 아니라 금ㆍ알루미늄ㆍ동ㆍ플라스틱 등을 소재로 한 명함도 있다.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명함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네모뿐 아니라 원ㆍ세모ㆍ오각형 등의 명함도 드물지만 눈에 띈다. 병풍처럼 접을 수 있는 명함은 할 말이 많은 설명형, 다국어 스타일이다.

인쇄ㆍ가공술을 활용해 특이하게 보인 명함도 많다. 보통의 인쇄를 한 뒤 여러 가지 후(後)가공을 하면 더 비싸진다. 후가공도 종류별로 다양하다. 쉽게 뜯어지도록 작은 칼집을 연속으로 넣는 미싱, 명함에 원형의 구멍을 뚫어주는 타공, 사각형의 명함에 사방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어주는 귀돌이(라운딩), 얇은 금색(은색)의 필름을 원하는 형태로 종이 위에 찍어 넣는 금박(은박), 원하는 형태로 종이를 눌러주어 튀어나오거나 들어가게끔 처리를 해주는 형압, 송진가루를 위에 뿌려준 후 열로 녹여 살짝 도드라지게 올려주는 뉴엠보 등이 있다.

회사 차원서 튀는 경영철학 담기도
기업들은 표준형을 선호하지만 튀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도 한다. GS칼텍스는 일반 명함에 윤리경영 제보 라인(전화번호 및 담당 임원)을 추가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명함에는 예외가 없다”며 “회사의 CEO에서부터 말단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명함에는 반드시 윤리경영 제보라인을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5월부터 디자인을 중시하자며 명함⑨에 ‘DESIGN’이라는 글자를 크게 새겨 넣었다.

LG텔레콤은 2005년 모든 임직원에게 14K 금을 입힌 ‘골드 명함’을 나눠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금처럼 변치 않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다짐을 명함에 담은 것이다. 와인 수입업체인 수석무역은 와인 소개가 담긴 명함을 만들었다. 명함 전면에는 와이너리(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와 제품명이, 뒷면에는 레드ㆍ화이트ㆍ스파클링과 같은 와인 종류, 색, 향, 맛 등의 정보가 표시돼 있다.

이렇게 튀는 명함이 등장하는 이면에는 현대인들의 여러 가지 소망이 자리 잡고 있다. 경력 컨설턴트인 윤영희씨는 “요즘 사람들은 기존 회사나 조직에서 벗어나거나 쫓겨나 스스로 소망을 이뤄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명함을 바꿔 자신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성공하면 명함은 다시 보수적으로 바뀌고 더 성공하면 퇴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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