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vs 하토야마 ‘형제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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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하토야마 총리)은 주일미군 철수론자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의 동생인 구니오(邦夫) 전 총무상이 19일 형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최근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 문제를 둘러싼 미·일 간 논란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하토야마 총리의 평소 신념을 공격 소재로 삼은 것이다.

구니오는 이날 소속 정당인 자민당의 누카가(額賀)파 모임에서 “1996년 민주당 창당 시 현재의 간 나오토(菅直人) 부총리, 형(하토야마 총리), 요코미치 다카히로(橫路孝弘) 중의원 의장 모두 ‘미군의 상시 주둔은 필요 없다’는 기본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빨리 (후텐마 비행장) 해외 이전을 실현하지 않는다면 그건 (민주당) 창당 당시와 생각이 바뀐 것”이라고 압박했다. 마치 형을 소신을 굽힌 ‘변절자’같이 묘사한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버티고 있지만 현 판세로는 2006년 미·일 합의대로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沖繩)현 나고(名護)시의 슈와브 기지로 이전해야 할 상황이다.

구니오의 발언은 특히 하토야마 정권 출범 이후 나온 정책에 관한 첫 평가여서 주목을 끌고 있다. 더욱이 자민당은 총선 패배 후 당을 정비하지 못한 채 여당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형제 간 싸움에일본 정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토야마 이치로(一郞) 전 총리의 손자인 두 형제는 생김새와 성격 모두 반대다. 활동적인 동생은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곧바로 중의원 의원이 됐다. 반면 수줍음 많고 학구파였던 형은 도쿄대 공대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학자의 길을 걷느라 동생보다 10년 늦게 정치를 시작했다.

자민당 의원으로 시작한 두 사람은 93년 탈당해 함께 민주당을 세웠지만 2000년 구니오가 자민당에 복당,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구니오는 “민주당 노선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우애(友愛)정치’를 외치는 형 유키오는 그 후에도 동생에게 줄곧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민주당에 돌아오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생은 형과 거리를 두고 있다. 아소 내각에서 경질된 뒤 그의 민주당 입당 소문이 돌았지만 “형과 손잡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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