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베스트셀러에 대한 인식 바꿔야겠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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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북섹션 B14면에 실린 일본 출판계 이야기가 아주 재미 있습니다. 10년 전에 비해 일본 베스트셀러들의 쪽수가 늘어났다는 기사 말입니다. 베스트셀러가 두꺼워지는 이유에 대해 일본 출판 관계자는 독자들에게 책을 읽었다는 만족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라고 풀이합니다. 우리 출판인들의 인식과는 크게 다른 대목이지요. 요즘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는 소설로 가장 적합한 길이가 200자 원고지로 700장 분량으로 통합니다. 아마 10년 전엔 1000장은 넘었을 것입니다.

최근 미국 출판계에서 나온 한 연구 보고서에서도 베스트셀러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크게 다른 대목이 발견됩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조교수 앨런 소렌슨이 2001년과 2002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책들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독자들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책을 구입한다고 해서 다른 책의 구입비를 줄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스트셀러의 탄생은 그 자체로 판매고의 순수한 증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는 그 책과 같은 장르의 다른 책들의 수요도 창출한다고 합니다. 우리 출판계는 흔히 개인이 도서 구입비로 책정한 예산은 같을 터이니 베스트셀러를 사면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한 책의 판매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왔습니다. 단행본을 소개한 TV 프로그램에 독서시장을 왜곡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던 것도 그런 시각에서였습니다.

그렇다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책의 판매는 어느 정도 달라질까요. 소렌슨의 연구보고서에는 대니얼 스틸과 존 그리샴 같은 유명 작가들의 경우 출간 첫 1년을 기준으로 할 때 판매량이 13~14% 늘어나는 수준에서 그칩니다. 그러나 저자가 신인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자그마치 57% 늘어난다는 분석입니다. 우리 출판인 모두 베스트셀러를 많이 많이 내시기를 기대합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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