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교회와 민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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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십년쯤 전 가톨릭단체인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월례발표회에서 한 수녀 연구자가 뮈텔 주교(1854~1933)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일이 있다. 1890년부터 40여년간 조선교구장으로 있었던 뮈텔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하나다. 그런데 그는 조선 독립을 반대하고 일본 통치를 지지하는 입장을 재임중 견지했다.

모인 학자들은 거의가 가톨릭신자였다. 발표가 끝난 후 한 50대 교수가 항의성 논평을 했다.

이 논문에는 뮈텔 주교가 한국 민족주의에 역행한 행적이 그려져 있는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연구자가 신앙인이라면 그렇게 어두운 면을 굳이 파헤쳐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한 40대 교수가 반론을 제기했다. 교회사도 엄연히 역사의 한 부분인 이상 신앙심을 앞세워 역사학의 원칙을 버릴 수 없다, 아무리 부끄러운 역사라도 밝힐 사실은 엄정하게 밝힌 다음 그 밝혀진 결과를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고민하는 것이 교회사가의 도리라는 것이었다.

교회사 연구자에게 학문이 먼저냐, 신앙이 먼저냐 하는 이 논쟁이 열띨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해방 전의 교회사를 돌아보는 천주교회의 입장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방영될 KBS 3.1절 특집은 일제시대 조선천주교회의 반민족적 행태를 부각시킬 것이다. 사실 조선천주교회는 안중근 의거를 범죄로 규정한 외에도 3.1운동을 외면하고 교인의 신사(神社)참배를 허용하는 등 일본 제국주의에 꾸준히 협조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가톨릭' 이란 원래 '보편성' 을 뜻하는 말이다. 다른 종교에 비해 전세계적 보편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가진 가톨릭교회는 유럽인의 세계정복 과정에서 도처의 고유한 문화.체제와 갈등을 일으켰다.

그래서 19세기 가톨릭 선교사들은 '문화적 제국주의' 의 주역으로 지목받는다. 부패하고 무능한 조선왕조 대신 힘있는 일본통치를 뮈텔 주교가 환영하고 그와 결탁하려 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일이다.

보편성의 원리는 옛 질서를 파괴하는 역할을 맡는 한편 새 질서 형성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20세기 전반 민족주의에 역행했던 한국천주교회가 20세기 후반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향상'에 뛰어난 공을 세운 것은 같은 보편성의 원리 덕분이었다.

10년 전 달아오른 논쟁을 최석우(崔奭祐)소장신부는 이런 논평으로 마무리지었다. "뮈텔 주교님은 조선인의 육신보다 조선인의 영혼을 더 사랑하신 분이었나 봅니다." 신앙인이면서 역사가로 오랫동안 고뇌한 흔적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전반기의 과(過)도 후반기의 공(功)도 모두 20세기 역사로 돌리게 된 이제, 작은 시비에 집착하기보다 큰 원리로 눈을 돌려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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