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선연대를 위한 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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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처음으로 공권력과 충돌했다.

총선연대는 서울지역 낙천 대상자 중 각당에서 7명이 재공천됐는데 그 공천과정이 해당 지역구 대의기관의 추천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정당법(제31조)과 선거법(제47조)을 위배했다며 공천 무효소송을 내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려 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명단을 현수막에 게재한 것이 불법이라며 현수막을 떼내고 서명운동을 막다가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총선연대와 선관위의 물리적 충돌은 낙천.낙선운동이 벌어지는 한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고 심각한 불상사도 예상된다.

총선연대가 '밀실공천은 불법(不法)' 이라면서 어떤 때는 법을 내세우고, 어떤 경우에는 법에 불복종하겠다니 국민으로선 의아스러운 면도 있다.

정치판을 개혁하자면서 공권력과 다투고 법을 어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선관위나 총선연대 모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이미 수차례 언급했듯 많은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은 낙후하고 부패한 정치판을 개혁하려는 순수한 선의(善意)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국민이 압도적인 성원을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선관위나 법집행 당국도 이 운동을 법조문에만 매달려 좁게만 볼 것이 아니라 보다 넓게 그 취지를 살리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국회에서 여론에 떼밀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가능하도록 일부 조항을 고쳤다곤 하지만 실제론 아무 것도 풀어준 게 없다.

낙선운동을 허용하되 서명운동이나 피켓은 안되고, 낙선 후보 이름을 외쳐도, 편지를 보내도 안되게끔 돼 있다. 그러면 어떻게 낙선운동을 하나. 이런 선거법 개정은 사실상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 낙선운동을 불법으로 몰아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충돌사태만 해도 그렇다. 후보자 이름을 현수막에 쓴 것이 위법이라는 게 선관위 주장이다. 그러나 특정 선거구의, 특정 대상자를 꼽은 것도 아니다.

서울 전체의 낙천 대상자 이름을 쓴 것은 선관위가 허용한 '단순한 의견개진' 으로 넓게 해석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그것이 바로 낙선운동이 아닌, 공천의 불법성에 대한 소송 준비용이므로 그 역시 공천에 대한 의견개진을 허용한 범위 안에 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다.

선관위 역시 법 적용에서 고충이 많으리라 이해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낙천.낙선운동의 근본취지를 폭넓게 허용해 주는 범위까지 법 해석을 확장하는 노력은 정치풍토 개선을 위해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선거와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는 선거법(제1조)의 취지에도 맞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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