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폭스 TV 도덕성 시비 도마에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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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 폭스TV가 '부도덕한 상업 언론' 시비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폭스TV는 지난 16일 '누가 백만장자와 결혼하고 싶은가' 란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겠다는 여성들을 공개 모집해 한 시간만에 결혼을 성사시키는 내용이었다. 상대인 백만장자는 방송 전까지 신원이 공개되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지만 백만장자니까 무조건 결혼하겠다는 여자들의 신청이 줄을 이었다. 폭스TV는 그 가운데 50명을 후보로 선정했다.

여성단체 등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결혼제도를 모욕한다" 고 비난을 퍼부었지만 인간의 나약하고 얄팍한 심성에 편승한 이 프로그램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프로그램은 캘리포니아 부동산 개발업자 릭 록웰(42)이 "나와 결혼해달라" 고 목을 빼고 있는 여자들 가운데 응급실 간호사 다바 콩거(34)와 결혼식을 올리는 대목에서 절정을 이뤘다.

두 사람은 곧바로 카리브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부에겐 또 3만5천달러의 다이아몬드 반지와 자동차 한 대가 부상으로 지급됐다.

재미를 붙인 폭스TV는 이 프로그램을 22일 재방송할 계획이었다. 게다가 5월엔 여성 백만장자에게 구애하는 남성 후보들을 출연시키려는 구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특정인이나 정부기관의 뒷조사로 유명한 한 웹사이트(http://www.TheSmokingGun.com)가 백만장자 록웰의 전과기록을 공개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록웰은 1991년 동거녀가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폭력과 함께 살해 협박을 한 혐의로 로스앤젤레스 항소법원으로부터 6개월간 피해자 2백70m 이내에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 것. 록웰이 진짜 백만장자인지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됐다.

무명의 코미디언이었던 그가 어떻게 부동산업자로 변신, 부를 모았는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폭스TV측은 부랴부랴 조사에 나서 "그의 재산을 조사해본 결과 2백만달러 정도" 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수백만 달러' 의 갑부라던 선전에 비하면 궁색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이들 신혼부부의 관계도 1주일만에 심상찮은 기미를 보이고 있다.

ABC방송에 따르면 지난 20일 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록웰 옆에는 신부가 없었다. 이들 부부가 언급하지 않아 구체적인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혼의 달콤함은 없는 것 같다는 게 미 언론의 보도다.

폭스TV는 말썽이 일자 이 프로의 재방송을 포기했으며 5월에 여성 백만장자를 출연시키려던 후속 프로그램 제작 계획도 재검토키로 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선 시청률만 높다면 인간관계를 왜곡시키는 이런 프로그램도 마구 방영하는 상업언론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뉴욕〓신중돈 특파원,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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