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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질이란 마음의 아토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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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혀 떠나 보낸다.”

송길원 목사는 ‘겸손’의 뜻을 풀면서 “내가 모른다는 걸 얘기하는 게 겸손이고, 진짜 겸손 중의 겸손은 내가 죄인인 걸 무릎 꿇고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송길원(52·하이패밀리 대표) 목사는 이 말부터 꺼냈다. 천 마디 말보다 용서의 의미를 실감나게 전하는 구절이라고 했다. “기독교에선 ‘치유’란 말을 자주 씁니다. 방법도 어려가지죠. 동작 치료, 댄스 치료, 그림 치료 등. 그런데 저는 국내에 아직 낯선 ‘잠언 치료’ ‘명언 치료’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궁금해졌다. 잠언 치료가 뭐지? 말장난은 아닌가? 송 목사는 고개를 저었다. “기독교 용어는 너무 추상적입니다. ‘대각성 전도집회’나 ‘성령의 역사’라는 말을 들을 때 교회 밖 사람들은 거리감을 느낍니다. 소통의 언어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죠. 저는 ‘설교자는 시인이 돼야 한다’는 월터 브루그만(미국 컬럼비아신학교 명예교수)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송 목사는 ‘고집’ ‘분노’ ‘깨달음’ 등 일상 속의 언어 600개를 골랐다. 그리고 묵상을 통해 길어 올린 단어의 울림을 한 줄로 정리했다. 그걸 4권의 책으로 묶어서 『마음사전-비움과 채움』(해피홈)을 출간했다. 이런 식이다. ‘소문’이란 말에는 ‘진심의 위조지폐’란 풀이가 달려있다. 또 ‘질투=사랑의 반올림’ ‘자식=주머니 속의 송곳’ ‘눈물=행복엔진의 오일’ ‘깨달음=뇌의 자명종 소리’ ‘신경질=마음의 아토피’등으로 정의한다. 그렇게 600개의 단어마다 크고, 작은 메아리를 담았다.

그런데 책 제목이 눈길을 끈다. 비움과 채움, 얼핏 들으면 불교적 뉘앙스다. 그러나 그건 기독교 영성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가 피눈물을 흘리며 올렸던 기도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였다. 그건 내 뜻에 대한 비움이자, 아버지 뜻에 대한 채워짐이었다.

송 목사는 말을 이었다.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헌장인 ‘산상수훈의 팔복’을 보세요. 그건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로 시작합니다. 마음의 가난함, 그건 비움이죠. 그런데 따라오는 뒷구절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죠. 그건 채움입니다. 비움과 채움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돼 있죠.”

그러고 보니 탁자 위에 올려놓은 송 목사의 손가락에 뫼비우스띠 모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 반지에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뫼비우스띠는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죠. 겉은 겉이고, 안은 안이지만 뫼비우스띠에선 안과 밖이 하나가 되죠. 나와 하나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립적인 나가 하나님 안에 있는 거죠. 그렇게 하나 되는 시점을 ‘기도로 응답 받는 순간’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그가 정리한 600개의 단어에는 그 ‘하나 됨’을 위한 이정표가 군데군데 보인다. 송 목사는 ‘고집’이란 단어를 ‘깨뜨려야 할 생각의 껍질’이라고 풀었다. 고집은 장벽이다. 그 장벽 너머에 늘 아버지의 뜻이 흐르는 법이다. 그는 또 ‘관용’이란 말을 ‘솔로가 아닌 듀엣’이라고 정의했다. 예수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이웃이 내 몸이 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솔로가 아닌 듀엣이 된다. 그는 ‘지혜’에 대해선 ‘영원의 관점으로 만물을 바라보는 능력’이라고 간추렸다. 송 목사의 단어 풀이에는 때로는 일상의 재치가, 때로는 묵상의 잔물결이 인다.

끝으로 송 목사는 ‘교회의 설교 방식’에 대해 꼬집었다. “설교는 도그마(독단)가 되면 안 되죠. 높은 곳에서 쏟아 붓는 꾸지람과 훈계는 곤란합니다. 설교는 감동과 위로의 메시지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가 마음을 열기 때문이죠. 이번에 간추린 600개의 단어는 딱딱한 설교 대신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짧은 노크’입니다.”

글·사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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