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 명작] 3. 전수천 '토우의 눈-199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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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우리나라에는 '1% 건축법' 이라는 것이 있다.

연면적 1만㎡가 넘는 신축 건물은 건축비의 1%를 환경조형물에 지출하도록 하는 문화예술진흥법의 한 조항이다.

건축주들의 무성의로 저질 미술품을 양산한다는 비난을 받아왔지만 도심 속에 미술 환경을 조성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서울 소공동 한화빌딩 로비에 놓인 작가 전수천(53)의 설치물 '토우의 눈-1995' 는 '1% 건축법' 의 양면성을 떠올리게 한다.

1층에 은행이 입주해 있고 바로 옆에 호텔이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는 점은 '공공미술품' 의 취지를 살리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입지 조건.

그러나 불행히도 작품의 의도나 규모에 비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실패했다.

건물 후문 쪽인데다 화장실이 있는 구석진 장소에 놓인 까닭이다. 1백여대의 TV 모니터를 항상 가동해야 하는데, 꺼져 있을 때가 대부분이라 기대한 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모니터에선 사계절에 따라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흘러나와야 한다.

'죽어있는' TV 모니터를 배경으로 토우가 들어있는 유리상자 수십개가 루빅스 큐브를 자른 단면처럼 붙어있다.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는 토우는 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한 작가의 단골 소재로, 티끌 한 점 없이 순박한 마음을 지닌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문명 속에 찌들어 있지만 언제든 소박한 태초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어하는 현대인을 나타낸다.

좀 단순한 이분법 같지만 TV와 흙인형(土偶)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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