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학] 왜 비쌀수록 잘 팔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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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고급 호텔 앞에 최신형 벤츠가 한 대 선다. 샤넬 옷에 구찌 핸드백을 든 중년 여인이 차에서 내린다.

옆에 있던 여성들은 부러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바로 호텔의 고급음식점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호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일 거예요. 그런데 이 중년 여인이 '최고급' 만 쓰는 이유가 뭘까요?

그녀는 비싼 옷이나 차를 살 만큼 돈이 많다는 것을 내보이면서 다니는 것이지요. 물론 고급 브랜드의 상품이 비싼 만큼 질도 좋을지 몰라요. 하지만 값이 일반적인 물건의 8~9배라고 해서 질도 그만큼 좋지는 않아요.

한번 생각해 봐요. 남대문 시장에서 옷을 살 때가 있지요?

그런데 백화점에서 비슷한 모양의 옷을 5~6배 비싸게 샀다고 해서 옷의 디자인이 그만큼 더 좋다고 느꼈거나 오래 입은 적이 있나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을 거예요. 결국 고급 옷이 비싼 이유는 제품의 질보다는 그 상표 자체를 보고 돈을 많이 냈기 때문이지요. 그 중년 여인은 "나는 부자다" 라고 알리려고 무척 많은 돈을 낸 셈이죠.

이렇게 '돈이 많다' 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어떤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경제학에선 '과시적 소비' 라고 해요.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렌은 '유한계급(Leisure class)론' 에서 대중사회에서는 누가 더 잘 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알리려고 과시적 소비를 한다고 주장했어요.

사람들이 과시적 소비를 하기 위해 사는 상품은 값이 비쌀수록 더 잘 팔릴 거예요. 만약 구찌 핸드백의 가격이 내린다면 누구든지 살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지요. 보석.밍크코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물건의 값이 비싸다는 것 자체가 이를 사서 쓰는 사람에게 만족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어요.

이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물건 값이 비쌀수록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값이 내려갈수록 사는 사람이 줄어들 거예요.

물건 값이 비싸지면 사려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수요의 법칙' 에도 예외가 생기는 것이지요.

요즘 고급 상표의 옷만 사서 입으려고 하는 청소년들을 흔히 볼 수 있어요. 혹시 이들이 그러는 것도 질 좋은 옷을 입고 싶다는 생각보다 "난 이 옷을 입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어" 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닐까요□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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