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깎인 희망근로 예산 … 혹시 출구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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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근로프로젝트와 공공기관 인턴제. 말 많고(“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 탈 많은(“부적격자의 용돈 벌이 수단이다”) 두 제도는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터널을 통과 중인 저소득층에게 안개등 역할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상위 20% 계층의 총소득을 하위 20% 계층의 총소득으로 나눈 값이 떨어졌다. 수치가 낮을수록 소득 격차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통계청은 “저소득층은 개인당 월 83만원을 주는 희망근로와 근로장려금에서 일부 소득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소득 보전 효과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내년이면 금융위기가 끝난다는 판단에서일까. 두 사업의 정부 예산안이 대폭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가 국회 예결위 정갑윤(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와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희망근로 예산은 66.5%(1조3280억원→4456억원), 공공인턴제 예산은 52.2%(373억7300만원→178억7800만원) 줄었다. <그래픽 참조>

재정부는 감액 사유로 “(내년엔) 경제위기 이전 상황으로 회복이 예상돼 사업 규모를 축소해 예산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금융위기 끝=재정 통한 저소득층 일자리 창출 필요성 감소’란 등식이 성립한다. 정부가 ‘출구전략’을 준비 중이란 의미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두 사업의 지속 여부를 놓고 고민해 왔다. 재정 투입 규모가 커 처음부터 ‘한시적 사업’이란 꼬리표를 붙여놨다. 그러나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신속한 재정 투입과 조기 예산집행 같은 총력전을 앞으로도 펴주길 바란다”며 ‘출구전략은 이르다’는 메시지를 강조했고, 정부는 희망근로 등 일자리 사업을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가기로 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예산통’인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두 사업은 사실상 ‘지자체별 돈 나눠 먹기’였다”며 “이 예산을 더 삭감해 지방 중소기업 지원책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삭감이 이르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특히 공공인턴제의 경우 올해 월 110만원 지급되던 보수가 76만4000원으로 40만원 넘게 줄었다. 같은 당 정갑윤 의원은 “110만원을 줘도 중도 포기자가 많았는데 70만원 주면 누가 지원하겠느냐”며 “아궁이에 불을 때도 윗목이 따뜻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듯 경기가 회복돼도 고용시장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은 두 사업에서 줄어든 예산이 4대 강 사업의 재원으로 옮겨간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이시종 의원은 “두 사업을 포함한 일자리 예산, 서민·장애인·중소기업 지원 예산이 곳곳에서 대폭 줄어들었다”며 “4대 강 사업 예산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예결위 간사였던 우제창 의원은 “애당초 하자가 많은 땜질식 처방에 불과했다”며 “돈 나눠주기 사업의 예산을 줄여 보건교사 및 소방공무원 확충 등 서민 생활 인프라 구축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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