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씨 불출마선언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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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權魯甲) 민주당 고문이 8일 16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지금껏 대통령과 당을 위해 봉사해왔던 것처럼 이번 총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밝혔다.

權고문은 이날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을 만나 직접 성명서를 건네주면서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의례적인 기자회견도 생략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權고문은 지난달 하순 시민단체 공천반대 명단에 자신이 포함되자 고뇌를 거듭해왔다" 며 "설날 연휴 직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거취문제에 관해 상당히 교감한 것으로 안다" 고 밝혔다.

특히 權고문은 자신이 16대 국회 진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물갈이가 검토되는 다른 중진들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는 점을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權고문은 "평생 DJ를 아버지로, 형님으로 모셔왔다. 대통령이 고민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면서 결심의 배경을 표시했다.

그는 金대통령을 39년간 보좌한 최측근이자 당내 2인자로 평가받고 있으나 한보사건 당시 2억원을 받아 시민단체 명단에 올랐다.

金대통령도 權고문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자진 사퇴시킨 만큼 이를 중진 물갈이의 지렛대로 최대한 활용할 전망이다.

당내에선 "權고문의 선언을 계기로 수도권.호남지역 현역의원에 대한 엄청난 '물갈이 태풍' 이 몰아닥칠 것" 이라며 긴장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 당직자는 "金대통령은 4.13총선에서 세대교체와 정치개혁을 앞세워 당선가능성이 큰 젊고 참신한 인물들을 대거 공천할 여지를 넓혔다" 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경실련.총선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명단에 오른 당내 중진들로선 큰 압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경실련.총선연대 등이 발표한 명단에는 수도권의 김상현(金相賢).이종찬(李鍾贊)고문, 손세일(孫世一).이성호(李聖浩)의원, 정대철(鄭大哲) 전 의원 등이 포함돼 있다.

또 호남에선 명단에 들어간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 박상천(朴相千)총무, 김인곤(金仁坤).조홍규(趙洪奎)의원과 지역구 여론이 좋지 않은 의원 등 20여명이 물갈이 태풍권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와 관련, 여권 고위관계자는 "金대통령이 시민단체 의견을 존중한다고 천명한 만큼 이들 중 일부에 대해 權고문처럼 스스로 불출마 선언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이들에겐 정부부처나 정부투자기관 등에 자리를 배려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역구 당선가능성이 작은 수도권의 K.C의원 등에 대해선 전국구를 배려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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