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한영옥 '등대는 어디에나'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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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사람에게 마음 끝을 보이고

되돌아서서 걷는 거리

입춘 끝에 묻어온 밤안개 포근하건만

고드름 으스스 매달리는 꽃피던 시간

아직 문닫지 않은 커텐집 하나 등대처럼

긴 빛을 따스히 흘리누나

꽃피던 시간 하나 아주 끄려고

등대 앞에 바짝 붙어서 보았다.

꽃무늬 포풀린 덮은 탁자 위에서

밤 커피를 마시려는지 등을 굽히고

찻잔을 어루만지는 커텐집 남자

-한영옥(49) '등대는 어디에나' 중

밤 바다에는 등대가 있어 배들은 길을 잃지 않는다.

밤 바다가 아니라도 사람의 길에 등대는 어디에나 불을 밝히고 있다.

'한 사람에게 마음끝을 보이고/되돌아 서서 걷는 거리' 에서 한영옥은 등대를 만난다.

그래 입춘이 며칠 지났구나.

아직 늦은 밤의 바람이 찬데 불빛 새어나오는 커튼집 유리창 안을 엿보는 여자의 마음이 흑백영화의 필름처럼 돌아가고 있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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