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숨은 화제작] '머더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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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영화의 기본문법을 뒤집는 영화다. 흔히 스릴러물을 풀어가는 데는 순서가 있다. 살인이 벌어지고 갖가지 사실들을 근거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머더 게임' (원제 A Slight Case of Murder)의 매력은 앞뒤 순서를 뒤집었다는 데 있다. 코미디 형식을 취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기존 영화의 진부한 전개 방식에 '테러' 를 가하고 있다. 때문에 첫 단추를 끼운 구멍이 다소 엉뚱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공개한다. 말다툼을 하다 넘어진 로라가 죽는다. 함께 있던 영화 평론가 테리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유명인인데다 애인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 테리는 갖가지 범죄 영화를 떠올리며 로라의 아파트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워나간다.

이후 영화는 테리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알리바이를 만들고 좁혀져 오는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과정이 코믹하다.

형사가 작성한 시나리오를 봐준다며 수사 진행 상황을 시시각각 보고 받기도 한다. 또 담당 형사와 친해지려 하다가 그의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만다. 테리는 좌충우돌 끝에 깔끔하게 사건을 마무리하지만 엉뚱한 이유로 체포되고 만다.

주인공을 악명높은 영화 평론가로 설정한 것도 흥미롭다. 제작진은 팔짱을 낀 채 비판만 늘어 놓는 평론가를 '직접 한번 해보라!' 며 영화 속으로 밀어 넣는다.

실수를 연발하는 테리를 통해 영화 제작이 이론만큼 손쉬운 작업이 아님을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또 테리가 시청자를 향해 수시로 던지는 대사도 기발하다.

영화 '파고' 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윌리엄 H. 메이시가 주연을 맡았다. 애인 키트역을 맡은 펠리시티 허프먼은 실제 그의 아내다. 'LA 컨피덴셜' '베이브' 의 제임스 크롬웰이 음흉한 사립탐정으로 출연한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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