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플러스] "스태그플레이션 없다" 한은 발표의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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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입조심으로 소문난 한국은행이 8일 보도 예정에도 없었던 자료를 갑자기 기자실에 배포했다.

제목도 '고유가 지속시 스태그플레이션 초래 가능성 점검'으로 최근 경기 상황과 관련된 민감한 주제였다. 내용은 국제유가가 내년에도 50달러 이상으로 폭등하지 않는 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그동안 정부나 한은이 주장해온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논리다.

그러나 한은의 자료 배포시점을 두고 시장에선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바로 다음날인 9일 콜금리 추가 인하 여부를 결정할 금융통화위원회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시장 예상을 뒤엎고 콜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금통위가 이달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가 시장의 최대 관심사다. 최근 금융회사나 언론의 각종 조사에선 금통위가 이달에는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게 나왔다.

이런 마당에 한은이 갑작스럽게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자료를 내놓은 것이다.

금융시장에선 한은이 이달에도 금리를 내리기 위해 미리 여론몰이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빠르게 확산됐다. 고유가는 물가에 직결되는 변수다. 따라서 기름값이 어지간히 오르지 않는 한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통화당국의 논리는 금리를 추가로 낮춰 경기부양에 나서도 무리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최근 1주일간 오르기만 했던 시장금리가 이날 오전 급락세로 반전됐다. 시장이 예상 외로 민감하게 반응하자 한은은 서둘러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한번 점검해본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놓고 아무리 변명한들 그 선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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