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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기능인력 고용안정제 도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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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기를 지탱해 왔던 건설산업의 침체가 심화하면서 경제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총 건설 수주액은 전년 대비 약 13%, 그중에서도 특히 민간 부문은 정부의 각종 규제 강화 등으로 인해 35% 이상 격감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거기에다 골재.철근 등 주요 건설자재의 수급 상황 또한 올 들어 급격히 악화하고 있고, 바닷모래의 채취 중단으로 인한 골재의 수급 불안은 건설대란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마저 낳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건설산업의 끝없는 추락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의 인력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일반인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이 현상을 건설업이 대표적인 '3D업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 건설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업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중층 하도급 구조에 의해 공사가 수행된다는 점이다. 일정 요건과 규모를 갖춘 회사가 공사를 수주하지만, 실제로 일을 수행하는 주체는 공사 수주업체에서 하도급을 받은 전문 건설업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 건설업체에서 재하도급을 받은 영세업체나 또는 작업반장에 소속된 기능인력들에 의해 이뤄지기도 한다. 이들 업체에 속한 대다수의 기능인력은 일용직 근로자들이다. 고용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이직률도 높다.

더 심각한 것은 건설 기능인력의 사회적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위 번듯한 회사에 적을 둘 수 없고, 고용 형태마저 일용직이다 보니 결혼도 쉽지 않다. 날이 갈수록 고용의 안정성은 더 강조되지만, 건설 근로자들에게는 요원한 일일 뿐이다. 건설 기능인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일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 체류 중인 외국 근로자들에 의해 건설현장이 유지되는 현실이 방치돼서는 곤란하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범정부 차원의 시급한 대책을 필요로 한다.

가장 먼저 검토될 수 있는 대책은 미국 등 건설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건설업체가 일정 비율의 기능인력을 직접 고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수주산업이라는 건설업의 특성상 인력 운영의 어려움이나 노사문제 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건설산업의 생산성이나 품질, 안전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킴과 동시에 건설인력 수급난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도입이 필요하다.

다음은, 건설기능인력의 고령화와 숙련공 부족에 대한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 시행하는 일이다. 최근 노동부에서 직업훈련을 확대하고 고용관리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정책 중에서 훈련기관.건설업체.사업주단체.건설근로자단체 등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훈련 컨소시엄 제도'의 도입은 매우 바람직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안으로 판단된다. 또한 정부의 세제 지원 중단으로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직업훈련원을 부활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건설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가장 큰 산업 중 하나다. 침체돼 있는 경제 회복을 위해 건설 투자확대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고용 창출이 범국가적인 어젠다로 인식되고 있는 지금, 단기적으로는 극도로 위축된 건설산업을 활성화 함으로써 일자리를 제공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건설산업을 참여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추진에 필요한 기반산업으로 육성해 나갈 실효성 있는 정부 정책을 기대한다.

김종훈 한미파슨스㈜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