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글로벌 시대에 맞춘 복수국적 허용 환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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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법무부가 어제 복수국적 허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국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단일 국적주의’의 빗장을 풀겠다는 것이다. 해외주재원이나 유학생 부모의 자녀로 태어난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 국내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면 양쪽 국적을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만 22세까지 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또 해외 고급인력의 경우 국내 거주기간 제한 없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고,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만으로 원래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국적 자동 상실제도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글로벌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환영한다.

우리 사회는 뿌리 깊은 혈통의식과 복수국적을 특권층의 전유물로 보는 부정적인 인식 탓에 엄격한 단일 국적주의를 유지해 왔다. 이미 세계는 국경 없는 경쟁시대이며, 해외에 진출한 재외동포만 700만 명이 아닌가. 이제 복수국적 문제를 감성이 아닌 이성적으로 접근할 때가 됐다. 대만이나 이스라엘·독일은 징병제 국가이면서도 병역의무 이행과 관계없이 복수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일본 등도 복수국적을 용인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개정안이 결혼이민자나 화교 등에 복수국적을 허용한 것도 다문화의 포용이란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해외입양자나 해외에 20년 이상 장기 체류한 65세 동포에게 외국 국적 포기 의무를 완화한 것도 ‘글로벌 한인시대’를 열어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복수국적자의 경우 외국인학교에 외국인 자격으로 입학할 수 없도록 한 대목은 아쉽다. 자녀의 교육문제가 고급 두뇌를 유치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제한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울러 제3국에서 복수국적자의 외교적 보호권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특히 ‘원정 출산’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고, 복수국적자의 납세 회피나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부당 혜택도 예상되는 만큼 관계 당국은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꼼꼼히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