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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병무개혁 사령탑 오점록 병무청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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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연루된 병무비리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빗나간 자식 사랑' 이 빚어낸 한국사회 특유의 병무비리는 이미 치유할 수 없는 고질병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지난해 10월 고위 공직자 병역공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군가산점제 폐지 논란까지 가세하면서 신성한 국방의무에 대한 젊은이들의 회의적인 시각마저 우려되고 있는 시점이다.

병무행정 사령탑을 맡고 있는 오점록(吳祿)병무청장을 만났다.

[만난사람=김준범 정치부 부장대우]

-밀레니엄 벽두부터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병역비리가 또다시 불거져 나왔습니다.병무행정 총책임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잖아도 지난 2년간 국민들로부터 많은 질책을 받았습니다.‘지속적인 혁신과 새로운 병역문화 창달’을 새해 목표로 내세운 시점에 또다시 병역비리가 불거져 나왔는데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비리가 있다면 낱낱이 밝혀야 한다는 게 저의 입장입니다.필요하다면 관련자료 제공등 얼마든지 협조할 생각입니다.”

-역대 장관,청장들마다 ‘발본색원’(拔本塞源)을 다짐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왜 그렇습니까.

“병역비리의 가장 근본원인은 인력수급상 군에 안 가도 되는 사람,즉 남는 자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죠.게다가 근원을 해소하지 않고 대증(對症)요법에만 치중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내 자식 하나쯤이야’하는 특권·열외(列外)의식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검은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병무 담당자들의 직업의식 결여가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청장 부임 이후 어떤 병역비리도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웃으며)장담합니다.부임이후 감사관실을 통해 수시 점검을 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다른 군의관을 시켜 재신검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비리는 찾지 못했습니다.”

-병무청이 아무리 원칙대로 하려고 해도 그보다 힘 센 곳에서 영향을 미치면 비리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담당 공무원들이 철저한 직업의식으로 유혹의 손길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그런 관행을 과감히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병무청을 해체하라’는 요구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외국에도 병역비리가 있습니까.

“미국등 선진국은 모병제 국가고 독일·이스라엘 등이 우리처럼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우리같은 병역비리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제도 보다는 그나라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공무원의 직업정신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죠.”

-작년 10월 사상 처음 고위 공직자·직계비속의 병역사항을 공개했읍니다만 뭔가 미흡하다는 게 중론입니다.혹시 누락시키거나 은폐한 사례는 없었습니까.

“결코 없었습니다.고위 정치인의 탈영 사실까지도 공개되지 않았습니까.한 고위 장성출신 국회의원의 경우는 본적지 면사무소에 아무런 병적기록이 없자 담당 직원이 곧이 곧대로 ‘기록없음’이라고 보고해 한때 기피자로 의심받기도 했습니다.장군들의 병적기록은 별도 관리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라 생긴 해프닝이었죠.현재 추진중인 전산화 사업이 완료돼 모든 사람들의 병적기록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면 이런 의혹도 해소될 것입니다.”

-일부 부유층에서 해외영주권 취득 같은 ‘합법을 가장한 병역면탈(免脫)행위’가 지금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영주권을 받아 30세까지만 외국에 살면 합법적으로 면제해 주던 것을 앞으로는 36세로 올리고 귀국 보증인에 대한 과태료도 3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올릴 계획입니다.또 미귀국자나 기피자는 40세까지 공직임용·은행대출·각종 인허가를 제한하고 본인과 친권자의 신상을 신문지상에 공개토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부실한 의료장비 때문에 생기는 병역비리가 상당히 많았습니다.장비는 어느 정도나 보완됐습니까.

“예전처럼 의료장비의 헛점을 이용해 면제를 받아 보려는 시도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실례로 요즘엔 시력 문제로 면제되는 경우는 전무합니다.지난해 서울·대전·충남청에 CT촬영기 2대를 구입한데 이어 올해는 부산·광주·전남청에도 설치할 예정입니다.첨단의료장비인 MRI 2대도 곧 설치되면 종합병원 수준의 신체검사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신검하는 군의관과의 유착비리도 적지 않았지요.

“그래서 작년부터 지난 50년간 유지돼 왔던 군의관제 대신 민간 전문의,즉 ‘징병전담의사제’를 도입했습니다.이들은 각 분야별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순수 민간의사들로 작년에 1차로 31명을 채용,운용중인데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올해는 40명 정도 추가 채용할 계획입니다.이들은 소속 병무청에서 3년간 공무원 신분으로 근무함으로써 병역의무를 대체하게 됩니다.이렇듯 여러가지 대책을 강구하는 주된 이유는 통계적으로 병역비리의 70% 이상이 입대전 단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현역입영은 늘고 면제자는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총 41만4천6백명이 신검을 받았는데 이중 84.4%가 현역,9.9%가 보충역,4.6%가 면제판정을 받

았습니다.전년도 보다 현역·보충역은 0.8% 증가한 반면 면제는 1.5% 줄어들었죠.

주목할만한 건 작년에 면제나 공익근무 판정을 받은 2백54명이 나중에 질병을 완치했다며 재신검을 요구해 와 이중 1백76명이 합격판정을 받아 현역으로 입영을 했던 겁니다.전에 볼 수 없던 전혀 새로운 현상이죠.병역공개법이 통과된 작년 7월이후의 일이었습니다.기피나 면제로는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요.”

-인구의 자연감소 등으로 오는 2005년부터는 군에 갈 사람이 모자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연도별 병력소요’와 ‘장래 인구추계’ 등을 보면 그때부터 병역자원 감소로

충원에 차질이 예상됩니다.대비책으로 병역처분 기준을 강화,입영자를 늘리고 공익근무 같은 대체 복무자 수를 점차 줄이거나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또 여군 채용을 늘리거나 근무여건에 따라 복무기간을 다르게 적용(23∼28개월)하는 ‘차등 복무기간제’도 신중히 검토중입니다.”

-산업체 특례보충역의 경우 벤처기업 활성화 차원에서 대상업체를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그렇잖아도 현재 검토중에 있습니다.고급 두뇌를 굳이 국내에 묶어두기 보다는 해외 첨단기술을 배우도록 하는게 국가발전에 더 큰 이익이라는 판단 때문이죠.”

-군복무자에 대한 가산점제 논란을 어떻게 보십니까.

“가산점제의 기본취지는 군복무 기간중 생업과 학업을 일시 중단한 데 따른 개인적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것이지요.40년간 유지돼 온 이 제도가 폐지되면 장병들의 사기 저하와 병역의무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등이 우려됩니다.미국은 아들이 걸프전에 참전했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가 은행에서 무보증 대출을 받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여성에게도 병역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지금도 기회는 주고 있지요.그러나 이에따른 시설과 군수물자를 갖추기 위해 엄청난 예산이 소요됩니다.바로 그런 점 때문에 아직은 이르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병력 1인당 유지비는 어느 정도입니까.

“지난 97년 자료를 보면 한국이 3백20달러,북한이 2백46달러로 나와 있습니다.가장 높은 나라는 이스라엘로 1천9백17달러,다음은 미국 1천18 달러,일본 3백25달러 수준입니다.가장 낮은 곳은 인도로 12달러에 불과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병무청의 인력구조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두 차례에 걸친 구조조정을 통해 약 16%의 인력을 줄였습니다.작년 7월부터는 읍·면·동 병무담당제가 폐지되면서 3천8백명이 감축됐습니다.이로인해 취약해진 일선 병무행정을 보강하기 위해 통합정보시스템등 전산화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정리=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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