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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시민단체 활동] 하. 유럽·일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지난 20일 영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선거구개혁 소사이어티(ERS)' 는 자체적으로 '전자 투.개표위원회' 를 발족시켰다.

선거과정을 좀더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한다는 취지에서다.

위원회 구성은 ERS 회장 출신 키스 하더웨이와 런던정치경제대(LSE)의 스티븐 콜맨 교수 등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그러자 집권 노동당과 야당인 보수당이 이에 뒤질세라 "우리 당 인사들도 참여해야 한다" 며 당 고문을 각각 위원회에 진출시켰다.

결국 선거법 전문가 폴 그리블(보수당), 변호사 제럴드 샤마시(노동당)가 가세했다.

위원회의 의장을 맡게 된 하더웨이는 "여야가 참여하고 각계 인사들이 망라된 위원회 활동을 통해 획기적인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질 것" 이라며 "6월말께면 개혁안의 윤곽이 드러날 것" 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영국을 비롯, 대부분 유럽 각국들의 시민단체들은 정당과 함께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개혁안 마련에 정당을 참여시키고, 선호하는 정당을 뚜렷이 밝히며 당.낙선 운동을 적극 개진한다.

그래서 어떤 단체들은 아예 정당화하거나 정당과의 연계를 돈독히 하는 사례도 있다.

◇ 당.낙선 운동〓1993년 9월. 대통령선거를 5개월 앞두고 독일에선 유례없는 논쟁이 벌어졌다.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가 동.서독 연대라는 명분에서 작센주 법무장관 출신 극우 정치인 슈테펜 하이트만을 대통령 후보로 공천한 것을 둘러싼 잡음이었다.

하이트만은 "범람하는 외국인들로 독일인들이 이질화될 우려가 있다" "여성은 가사에 적합하다" 는 등의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라 있는 터였다.

이에 시민단체와 언론들이 발끈했다.

"그가 당선되면 국가 망신" 이라며 대대적으로 낙천운동을 펼쳤다.

결국 콜은 백기를 들고 로만 헤어초크로 후보를 교체했다.

97년 5월 영국 총선. 보수당의 아성 태턴 지역구에서 노동당과 자민당의 연합공천 후보인 마틴 벨과 보수당 후보 닐 해밀턴이 맞붙었다.

결과는 벨의 압승.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해밀턴은 87년 통상산업부 장관 재직때 헤롯백화점 소유주 알 파예드로부터 호화접대를 받고 파리 리츠호텔에 공짜로 투숙한 '전과' 가 있었던 것.

시민들은 "부패 정치인인 줄 알면서도 공천한 것은 우리를 깔보는 행위" 라고 발끈,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벌였다.

일본에선 95년 지방선거 당시 시민단체들이 당선운동에 나섰다.

단돈 20만엔의 선거비용만을 사용한 아오시마 유키오(靑島幸男) 도쿄(東京)도지사 후보를 당선시킨 것. 언론들은 이를 두고 "혁명이었다" 고 평가했다.

◇ 정당과의 연계〓시민단체들이 정당화하거나 정당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경우도 있다.

독일 녹색당이 대표적인 예다.

68년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이끈 '68 학생세대' 들이 중심이 돼 78년 세력화한 녹색당은 80년 정당체제를 갖췄으며 98년 47석을 확보, 사민당과의 연정에 참여 중이다.

외무장관에 요슈카 피셔, 환경장관에 위르겐 트리틴을 진출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지구의 친구들' '공민의 자유' 등 영국 시민단체들도 선호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원하면서 선거과정을 서로 감시한다.

일본의 제1야당 민주당은 시민단체와의 연계를 추구하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는 이달 초 "우리 당은 비영리단체 등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시민참여형 정치를 지향한다" 고 말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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