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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 집 강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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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키가 아주 작았던 안자(晏子)에게는 훤칠한 체격의 차몰이꾼이 있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운전기사다. 지혜의 대명사로 존경을 받고 있는 제(齊)나라 재상 안자의 수레를 몬다는 이유로 이 남자는 꽤 폼을 잡았는가 보다. 늘 신이 나 있었고, 자랑스레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하루는 그 아내가 남편의 모습을 문틈 새로 바라봤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그에게 아내는 “헤어지자”고 요구했다. 이유를 묻는 남편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재상은 차분히 앉아 있는데 높은 데 걸터앉아 의기양양하게 수레를 모는 당신 모습을 보고 천박하다는 인상을 감출 수 없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일화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서 제 모습이 호랑이가 없는 틈을 타서 우쭐댔던 여우, 즉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경우에 닿아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어 그는 자신의 잘못을 다스린다. 자세가 달라진 차부(車夫)를 보고서 그 이유를 알게 된 안자가 그 점을 높이 평가해 벼슬 자리를 줬다는 게 후문이다.

정승 집에서 키우는 개가 죽으면 그날의 그 집은 문전성시다. 정승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라의 온 벼슬아치들이 조문을 오기 때문이다. 정승이 죽으면 상황은 그 반대다. 권력자인 정승이 죽고 없으니 찾아오는 이는 거꾸로 드문 법이다. ‘정승 집 개’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그래서 많다. 안자의 차부가 독립적인 인격을 이루지 못하고 늘 재상의 권력에 기대 잘난 척을 일삼았던 경우나, ‘정승 집 개’의 권력논리를 체득한 사람들이 당대의 권력자에게 빌붙어 몸종 노릇을 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속은 텅 빈 강정이다.

친박근혜 계열의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화제다. ‘보스’의 뜻과는 반대로 세종시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다. 호가호위의 단물에 빠져 독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차부와 실력자의 애완동물 처지를 벗어던졌다. 어딘가에 치우쳐 무리를 짓는 편당(偏黨)의 모습은 한국 정치의 일상적 풍경이다. 그럼에도 수도 기능을 이전한다는 중차대한 세종시 문제를 두고 파벌 수장의 견해에 파묻혀 열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친박계 의원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딱하다. 그들의 가슴에 달린 금배지가 아깝다. 요즘 금값도 치솟는다는데.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