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과 과학] '가려운 곳 긁어주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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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남의 궁금증이나 괴로움을 잘 알아서 풀어준다는 뜻. 가려움증이 빈발하는 요즘같은 겨울철이면 '긁어서 가려움이 해소되는' 그 '시원한' 맛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엄밀히 따진다면 가려움증은 긁어서 없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서울대 의대 조광현 교수(피부과)는 "심하게 긁을 경우 오히려 가려움증이 더할 수 있다" 고 말한다.

피부 가려움증은 히스타민 등의 물질이 혈관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차게 긁을수록 가려움이 더하다는 것은 혈관에서 유리되는 히스타민 양이 늘었다는 뜻이다. 자꾸 긁어주면 피부에 분포한 혈관이 확장되고 이에 따라 히스타민 등이 더 분비됨으로써 가려움증은 심해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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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풍기 근처에 오랫동안 머물렀을 경우 가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따스한 바람이 혈관을 확장시키기 때문에 히스타민 등의 분비가 늘어나 가려움증이 유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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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울 때 긁어서 시원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통증이 가려움증을 대체하기 때문. 신경학자들에 따르면 통증과 가려움증은 같은 경로를 통해 신경계에 전달된다. 이는 다시 말해 통증과 두려움증은 서로 경쟁적으로 신경계에 신호를 전달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 사람들은 좀 더 참기 쉬운 통증을 선택함으로써 가려움증이 사라진 것처럼 느낀다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가려움증에 대한 비밀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다. 가려움증은 공기가 건조할 때 빈발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가려움증과 피부 건조가 어떤 경로로 연계돼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비누칠 목욕을 하고 나서 가려움증이 느는 것도 비누가 피부를 더욱 건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누는 기름기를 제거하는데 기름기가 없어질 경우 수분 함유가 줄어든다. 때문에 겨울철에 가려움증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면 비누 사용을 자제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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