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병무비리 청와대 왜 나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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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병무비리 처리방식이 아무래도 이상스럽다.

반부패국민연대가 사회지도급 인사들의 병무비리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자마자 청와대 사정수석이 시민단체의 고발이 있으면 공개수사하겠다고 밝혔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 반부패연대는 명단을 청와대에 제출했다.

그 모양새가 석연치 못하다.

반부패연대는 병무비리 문건의 입수경위를 밝히지 않고 다만 상당히 신빙성있는 출처라고만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기관의 공식 문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정부 수사기관이 나서 유출경위와 그 문건의 내용을 밝히는 것이 순서다.

만약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새천년 민주당 창당대회 때 병무비리 척결을 강조했기 때문이라면 더더구나 말이 안 된다.

병무비리 처리가 미진했다면 그동안 왜 변죽만 울리다 슬며시 중단해야만 했는지 그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수사기관에 재수사를 강하게 지시하는 게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런데 왜 정부의 관련기관들은 수수방관하고 있고 시민단체가 나서고 청와대가 중간에 끼어드는가.

정부 관련 수사기관들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반부패연대의 처리방식도 합당치 않다.

그 자료가 신빙성이 있다면 반부패연대가 자체적으로 그 자료를 공개하거나 아니면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게 마땅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마치 청와대가 시민단체의 힘을 빌려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도모하려 한다는 의혹을 줄 수도 있다.

병무비리와 같이 전국민이 분노하는 특권층의 비리를 캐는 데 있어서는 특히 그 과정이 투명해야 하며, 정파적 악용의 의혹을 받지 않는 것이 긴요하다.

때문에 반부패연대는 그 문건의 출처와 유출경위를 명백히 밝혀야 하며, 정부도 시민단체의 제보와 상관없이 지금까지 덮어두었던 모든 병무비리를 정부 책임하에 척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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