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교등급제 여부는 대학의 권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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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현재 중3이 대학에 진학하는 2008학년도부터 적용될 내신 위주의 새로운 대입제도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능의 등급제로 학생의 실력 차이를 견주어볼 변별력(辨別力)이 떨어짐에 따라 고교별 학생부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등급제 실시가 불가피하다는 게 가장 큰 쟁점이다. 대학 측은 고교 사이에 격차가 엄연한 만큼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교조, 학부모 단체들은 특정학교 출신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다며 강력히 반대한다.

대학입시는 대학들이 건학이념에 따라 장차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예비 인재와 연구인력을 선발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대학들이 신입생의 자격과 기준, 전형방법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철저하게 보장해 줘야 한다. 선진 외국들은 대학 진학 희망자의 성적을 종합적으로 비교할 국가 차원의 학력평가자료만 제공한다. 우리나라처럼 수능과 학생부의 적용 비율을 국가가 대학에 강요하거나 본고사를 치르지 못하도록 일괄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 유별난 교육열과 과외병을 감안해 대학입시 자율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의 타협으로 국가는 등급화한 수능성적과 학생부만 제공하고 각 대학이 이를 토대로 자체적인 교육목표에 따라 기준을 정해 학생을 고르도록 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고교등급제 채택 여부는 대학의 고유한 권한이다. 고교평준화에도 불구하고 학교별 학력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무시하고 동일한 잣대로 입시사정을 해야 한다는 전교조 등의 주장은 아예 대학마저 평준화하겠다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개인의 소질과 재능의 극대화에 있지 모든 사람을 똑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 대학들은 60여년 동안 입시관리를 하면서 노하우와 공정성을 나름대로 축적하고, 신뢰도 얻고 있다. 따라서 각 대학이 정하는 기준이나 방법을 믿고 따라주는 것이 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