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도 주민 표정도 밝아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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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산격주공아파트가 최근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단지 안 꿈동산어린이집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국화꽃 화단을 구경하고 있다. 뒤편에 보이는 원두막도 새롭게 만들어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놀이터 주변이 이젠 아파트에서 훤히 다 내려다 보여요. 잘라낸 나무는 장승을 만들어 세우고…. 단지 입구부터 확 밝아졌어요.”

대구시 북구 산격1동 산격주공아파트에 10여 년째 사는 권후남(43·여) 통장은 새로 단장한 아파트 자랑을 늘어 놓았다. 권씨는 “놀이터에 새로 설치한 기구가 행여 고장날까 걱정이 된다”며 “아파트가 새로워지니 생각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산격주공아파트는 대구에 두번째로 지어진 1800여 세대가 사는 대규모 영구임대아파트. 주민은 탈북자인 이른바 새터민이 50여 세대가 살고 재개발로 쪽방 등지에서 밀려 온 사람 등 기초생활수급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단지는 ‘슬럼가’에 가까웠다. 엘리베이터는 수시로 고장 나고 방뇨에다 아파트 입구부터 쓰레기와 술병이 나뒹굴기 일쑤였다. 지나가던 주민이 고층에서 던진 병에 머리를 맞는 등 하루도 잡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파트 관리를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자회사인 주택관리공단 대구경북지사가 마침내 팔을 걷어붙였다. 주택관리공단은 올 초 30억원을 들여 산격주공의 거주 환경을 대대적으로 고치기 시작했다. 입주 18년 만이었다.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면 주민 의식과 삶의 질을 바꿀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아파트관리소 유상화(42) 소장이 중심이 돼 직원들은 몇달씩 머리를 짜고 땀을 흘렸다. 공사가 시작되자 도움의 손길도 답지했다. 북구청은 나무 전지작업을 도왔고 단지에 들어선 산격종합사회복지관은 피로티(아파트 1층의 기둥이 세워진 공간)에 밝은 색을 칠하고 벽화를 그렸다. 또 열린장애인문화복지진흥회는 장승을 만들고 일부 주민은 관리소에 음료수를 내 놓기도 했다.

단지에는 어린이집 앞에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쉼터인 ‘미지미 마루’ 원두막이 지어졌다. 105동 앞에는 솟대·조경석으로 테마공원이 들어서고 실개천도 꾸며졌다. 관리소는 아파트 외벽을 밝게 새로 칠하고 지하 입구는 철책을 설치해 노숙자의 접근을 막았다. 또 세대별 욕실 나무문을 바꾸고 오래 된 난방관 등도 교체했다. 거기다 단지 14곳에 운동시설이 새로 마련돼 주민들은 벌써부터 틈만 나면 이용한다.

18년째 이곳에 거주하는 차방부(67)씨는 “이젠 대구 어느 아파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주민 의식 바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은 관리비 부담이 늘어날까 봐 걱정이다. 관리소는 “그런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때맞춰 주민 모임인 임차인협의회도 처음으로 구성됐다. 권명수(40·여) 산격종합사회복지관장은 “복지관 앞에 원두막이 들어서 주민들과 소통이 원활해졌다”며 “주민들 표정이 확실히 밝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주변을 지나는 신혼부부는 세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 보기도 한다는 것.

권후남 통장은 “곧 관리소와 주민이 한데 어울리는 행사를 검토하겠다” 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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