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민정, 또 하나의 연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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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정이가 경기한 후 심판진이 다 같이 가슴을 쓸어내렸죠.”

[중앙포토]

8일 회장배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가 열린 태릉실내빙상장. 여자 싱글 마지막 순서로 나선 곽민정(15·군포수리고)이 ‘레 미제라블’에 맞춰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끝내자 심판단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정수 서울시빙상연맹 전무(ISU 국제심판)는 “그간 빙상계는 김연아(19·고려대) 이후에 대한 고민이 컸는데 민정이가 고민을 싹 풀어줬다”고 말했다. 곽민정의 뛰어난 연기로 한국에도 김연아를 받쳐줄 든든한 2위 그룹이 있다는 인식을 세계 빙상계에 심어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곽민정은 이 대회에서 김나영(인하대), 김채화(간사이대) 등 언니들을 제치고 금메달(143.87점)을 목에 걸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도 나가게 됐다. 올해 만 15세가 돼 시니어 자격을 얻은 곽민정은 김연아의 수리고 3년 후배다.

그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제2의 김연아’라고 놀리는데, 기분이 좋으면서도 ‘난 아직 연아 언니만큼 못하는데’ 하는 걱정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피겨선수들끼리 공연하면서 곽민정이 김연아의 ‘죽음의 무도’를 췄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평소 200여 명이던 미니 홈피 방문자가 8일 우승 후 4500명이 넘었다. 곽민정은 “이런 관심이 조금은 얼떨떨하다”면서도 활짝 웃었다.

곽민정이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하면서부터 꿈꿨던 건 ‘연아 언니처럼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김연아를 처음 봤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확 다른 기량을 보면서 “나도 꼭 멋진 피겨선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곽민정은 “연아 언니와 함께 밴쿠버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이 꿈만 같다”며 들뜬 눈망울을 반짝였다.

지난해 여름 멕시코에서 열린 2008 주니어 그랑프리 멕시코시티 3차 시리즈에서 동메달(117.42점)을 따내면서 곽민정은 두각을 나타냈다.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 김연아처럼 트리플 점프 5종(러츠·플립·살코·토·루프)을 다 뛸 수 있고, 빠르고 유연한 스핀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다.

이 전무는 “점프가 완전한 건 아니지만, 점프의 높이나 도약 스피드가 훌륭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주니어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은 흠.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이 전무는 “가녀린 체형이나 무대에서의 자신감, 여러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소화하는 능력 등이 김연아와 꼭 닮았다”면서 “이번 올림픽 무대에서 실수가 없다면 15위까지도 가능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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