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긴 협상으로 동양인 워킹맘 한계 극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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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매직(마술)은 없어요. 일과 가사, 당장은 균형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해도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세계한인변호사회(IAKL) 해외부문 회장인 민유선(45·영어이름 캐서리나 민·사진) 변호사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최근 만났다. 민 변호사는 지난달 22일부터 서울에서 열린 제17차 IAKL 총회 및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IAKL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회장을 맡았던 그는 이번 총회를 끝으로 2년 간의 회장직을 끝낸다. 민 변호사는 세계 10위권대 로펌인 ‘리드스미스(ReedSmith)’의 한국업무팀장이자 네살, 다섯 살배기 딸 둘을 둔 워킹맘이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여성과 동양인이라는 마이너리티(소수자)였지만 기회의 문은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벤처회사 설립부터 한국과 아시아권 기업의 미국 내 투자와 기업 인수·합병(M&A)에 이르기까지 법률 자문에 응하고 있다.“

- 여성과 동양인이란 것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계 변호사도 별로 없었다. 특히 여성들은 애를 낳은 뒤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가 많았다. 백인 남성들의 경우 풋볼 등을 하며 고객들과 쉽게 친해지는데 여성은 한계가 있었다.”

-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나.

“자아가 강해 이기려고만 하는 남성들에 비해 상대방이 뭐가 필요한지 인내심을 갖고 잘 들어주는 여성이 협상에 강하다고 본다. 수 년 전 일본 기업의 M&A 업무를 맡았는데 일본 측 관계자가 미국회사 CEO에게 ‘여자 변호사라 유감’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대 회사의 변호사와 CFO(최고재무책임자)도 여성이었고, ‘여자들끼리 잘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 워킹맘 생활이 쉽지 않을텐데.

“남편도 변호사여서 많이 이해해준다. 애들 재우고 밤 10시쯤 일을 다시 시작해 새벽 3시까지 국제전화로 회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에도 계절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연년생이다 보니 2년 반 정도는 가족이 더 중심이 됐다. 당장은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중·장기적으로 균형을 융통성있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고객과의 약속을 저녁 대신 점심으로 하고 재미있는 e-메일을 보내 관계를 유지한다.”

- 후배 여성 변호사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멘토부터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 ‘거의 모든 것을, 즉시, 격의없이’ 도와줄 멘토 말이다. 비즈니스는 실질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나는 일 잘하는 백인 파트너 변호사에게 멘토가 돼달라고 부탁했고, 그가 고객을 만나는 자리에 같이 다녔다. 또 만나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한두 단체에 깊이 관여해 리더가 돼야 한다.”

- IAKL 회장직에서 물러나는데 앞으로 계획은.

“교포 중에 오바마와 같은 롤 모델이 없다. 한국 교포들이 미국 내에서 목소리를 내고 차별받지 않으려면 훌륭한 한인 정치지도자가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의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한인 정치인들을 알리고 지원하는 모임을 구상하고 있다.”

글=박유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민유선 변호사=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갔다. 버지니아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90년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94년부터 4년 간 국내 로펌인 법무법인 세종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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