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윤영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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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새해 첫날 우리 가족은 양수리 친정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음력설에 갔으나 올해는 고3 되는 아들 때문에 이날을 택했다.

생전에 친정어머니는 아들아이를 무척이나 귀여워하셨다.

항상 "아무리 눈씻고 찾아봐도 우리 동현이만한 인물이 없다" 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양수리로 가는 길은 쾌적했다.

산에는 녹지않은 눈이 산타클로스의 수염처럼 눈부셨고 날씨도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우리는 산소에 도착해 돗자리를 깔고 절을 했다.

절을 하면서 나는 마치 두분이 살아계신 것처럼 여러가지 얘기를 했다.

산소를 돌보고 얼마쯤 머물다가 우리는 돌아올 채비를 했다.

그런데 아들아이가 품속에서 하얀 사각종이를 꺼내들었다.

"나, 할머니께 카드 써 왔는데…. "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할머니는 가셨어도 그 할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외손자의 가슴엔 그 사랑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내 마음은 잔잔히 떨려왔다.

아들은 카드를 산소 앞에 놓았고 애 아빠가 그 카드를 다시 집어 비석위에 세워 놓았다.

검은 비석 위의 하이얀 카드는 한 마리의 빛나는 새 같기도 했고 꽃같기도 했다.

우리 세 식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 카드와 비석을 바라보았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오늘 외손자의 카드를 받으시고 얼마나 기분이 좋으셨을까. 아마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지셨을거야. "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윤영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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