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중독증' 우울증 환자 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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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기업 과장인 金모(42)씨는 오전 8시쯤 되면 잔뜩 신경이 곤두선다.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10여차례. 줄담배를 피워대며 안절부절못하고 사무실을 서성거리다 주식시장이 개장하는 오전 9시가 돼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다.

지난 7일처럼 주가가 폭락한 날은 신경질이 나 일을 못할 정도였다가 주식값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부하 직원들에게 마구 술을 사곤 한다.

金씨는 심리적 기복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 최근 정신과 전문의를 찾았다.

주부 李모(38.서울 강남구 대치동)씨 역시 매일 정오만 되면 자신이 거래하는 S증권에 전화를 건다.

"오늘 아침엔 주가가 떨어졌는데 오후엔 올라갈까요. 어젯밤에도 남편한테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요. "

투자한 돈의 절반이상을 날린 李씨는 점심시간만 되면 1시간이 하루만큼이나 길게 느껴져 초조감에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 상담하며 안정을 되찾곤 하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새 천년 들어 코스닥시장이 급락을 거듭하는 등 주식시장이 크게 요동치며 불안해지자 알콜 중독과 비슷한 주식 중독증인 '스톡홀릭(stockholic)' 증후군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며 잠시도 주가를 알지 못하면 초조해지고 아무 일에도 집중할 수 없는 등 감정조절 능력을 상실해 일상생활에도 심각한 장애를 받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오전 9시가 다가오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오후 3시가 지나면 다음날 뭘 사고팔까 고민하다 잠을 못 이루며 주말엔 월요일이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대표적 증상" 이라고 지적한다.

또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매시간 인터넷에 들어가 주가를 확인하는 것도 유사한 증세라고 진단한다.

S화재의 경우 지난해말 업무시간에 주식 사이트의 '클릭' 을 엄격히 제한하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 주식 약정금액이 전년도에 비해 7배 가량 급증하는 등 투자자가 한꺼번에 몰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 J신경정신과의 경우 전체 환자의 30% 이상이 주식 중독에 따른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근 병원에도 같은 증상의 환자들이 진료를 받고 있다.

이대 목동병원 김영철(金永哲.신경정신과)과장은 "주식 우울증에 걸리면 인간관계에 파탄이 오기 쉬우므로 주변 사람들의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고 충고했다.

박현선.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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