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쌀 관세화 문제, 빨리 결론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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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92년 대선 이슈 중 하나는 농산물 시장 개방, 특히 쌀 시장 개방 문제였다. 야당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여당 후보이던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쌀 시장은 자리를 걸고 절대 열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당시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의 최대 쟁점이었던 농산물 시장 개방과 관련해 쌀 등 주요 농산물을 개방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겠다는 것은 UR에 참여하는 한 애당초 무망한 일이었다. 대통령 당선 후 YS는 결국 공약을 뒤집고 쌀 시장을 열었다. 정치적 약속보다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미래를 선택했다.

쌀 개방과 관련, 당시 정부는 내외 가격 차에 상당하는 높은 관세를 매겨 개방(관세화)하는 대신 아주 낮은 관세로 매년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방식(시장최소접근·MMA)을 채택했다.

당시 상황에서 이는 불가피했지 싶다. 관세를 얼마나 높게 매기든 쌀 시장 개방이란 말이 터부시되던 시절, 저율관세(5%)는 어찌됐든 수입량이 국내 소비량의 4% 이내라는 협상 결과는 정치·사회적 반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예 기간이 끝난 2004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주요 쌀 수출국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화 개방을 다시 10년간 유예하는 대신 MMA 물량을 연차적으로 두 배까지 늘려 주기로 합의했다. 당시에도 차제에 관세화 개방으로 가자는 논의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단골로 제기되는 국내 농업 피해 운운의 논리와 농민단체의 반발 속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요즘 산지 쌀값이 80㎏ 가마당 14만원 선을 위협하면서 농민들의 한숨이 깊다. 다음 주엔 서울에서 전국농민대회도 예정돼 있다. 쌀값 문제는 단기 처방만으론 풀기 힘든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다.

수요는 주는데 공급이 늘면 가격은 떨어진다. 지난 10년 새 20% 이상 줄어든 쌀 수요 감소 추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재고 처리에 도움을 준 북한 쌀 지원도 지난 2년간 중단 상태다. 공급 쪽에선 최근 풍작인 해가 많은 터에 쌀 수입까지 해마다 의무적으로 늘려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농산물은 약간의 물량 변화에 대해서도 가격이 매우 민감하게 움직이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쌀 수입은 앞으로도 해마다 2만여t씩 늘어 2014년엔 40만8700t에 이르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커지는 구조다. 앉아서 2015년의 자동 관세화를 기다릴 게 아니라 하루빨리 관세화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 여기서 생긴다. 내외 가격 차를 관세로 상쇄할 경우 수입 증가에 따른 피해 확대 우려는 없다는 게 지배적 예측이기 때문이다. 일본·대만 등 선례도 있다. 물론 조기 관세화에 반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논의 자체를 백지화하자는 주장은 온당치 않다. 외려 어느 쪽이 농민에게 진정한 이익이 될지 논리 대 논리로 싸우고,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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