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에 밥 비벼 먹더니, 파리아스 마침내 ‘매직’ 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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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선수들이 쐐기골을 터뜨린 뒤 포효하고 있다. 포항은 후반 12분 노병준의 선제골에 이어 21분 김형일이 헤딩 추가골을 터뜨렸다.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월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 스틸러스 감독은 김태만 포항 사장에게 “올해는 고사를 안 지내느냐”고 물었다. 포항은 고사를 지낸 뒤 후반기부터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10위까지 떨어졌던 K-리그 순위를 2위로 마감했다. 물론 고사를 지낸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한국 정서에 유연하게 녹아 들어 갔음을 알려주는 사례다.

파리아스가 이끄는 포항은 7일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를 꺾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대회 상금 150만 달러와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참가 보너스 100만 달러는 덤으로 챙겼다. 피스컵 코리아 우승에 이어 2관왕이다.

◆청국장부터 충무공 정신까지=한국 생활 5년째인 파리아스 감독은 못 먹는 한국 음식이 없다. 청국장에 밥을 쓱쓱 말아 금세 한 공기를 해치운다. “된장은 최고의 음식”이라며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예찬론을 펼친다. 얼굴만 서양인이지 마음은 딱 한국인이다.

지난 8월 포항 사장은 파리아스 감독에게 고급 승용차를 사 줬다. 파리아스 감독은 "감독이 사장과 동급의 차를 탈 수 없다”며 거절했다. 김 사장은 “이제는 한국 정서가 몸에 뱄다. 적극적이면서도 유연한 그의 스타일이 팀 운영에도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포항은 K-리그 챔피언십(6강 플레이오프)을 앞두고 충남 아산으로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다. 파리아스 감독이 “아산으로 가자”고 원했다. 아산은 지난 6월 포항의 전지훈련지였고 반전의 밑거름이 됐다.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취지에서 아산으로 정했는데 파리아스 감독도 충무공의 임전무퇴·유비무환 정신을 경청했다.

기뻐하는 파리아스 감독. [도쿄 AFP=연합뉴스]

◆살인적인 경쟁=파리아스 감독은 경기 전 라커 룸에 엔트리보다 한 명 많은 19명을 데리고 들어간다. 그리고 현장에서 한 명을 관중석으로 돌려보낸다. 제외된 선수 본인에겐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난다. 그러나 파리아스 감독은 눈도 깜짝 않는다.

그는 중용할 선수들을 단번에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는다. 일단 2군에 내려보낸 뒤 바짝 약을 올린다. 이런 담금질을 겪은 선수들이 더욱 강한 정신력으로 돌아와 팀의 주력 선수가 된다. K-리그 필드플레이어 중 최고참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김기동(포항)도 “파리아스 감독은 심리전의 명수”라고 말했다.

◆스타는 필요 없다=포항에는 국가대표가 수비수 김형일뿐이다. 특별한 스타가 없지만 포항은 K-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이 됐다. 조직력을 중시하는 파리아스 감독의 능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파리아스 감독은 “포항 유니폼에는 별 4개가 있지만 우리 팀에는 별(스타)이 없다. 선수 전원이 팀을 위해 뛸 뿐”이라고 강조한다.

도쿄=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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