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도는 민방위 上] 작년 서해교전때 상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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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포성은 울리고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관(官)은 주민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더군요. 너무 안이하다 싶었습니다. "

연평도 청년회장 최석(崔奭.38)씨는 지난해 6월 서해교전시 나타난 민방위체계의 허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북의 도발로 전국에 긴장이 넘쳤을 당시 북한땅이 빤히 보이는 연평도에 사는 주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는데 당연히 가동됐어야 할 민방위체계는 꿈쩍도 안했다.

6월 7일 북한 함정의 영해 침범이 시작된 뒤 군(軍)의 경계태세는 15일 교전이 벌어진 후 사실상 준전시상태인 '데프콘 3에 준하는 상태' 까지 올랐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이런 사태는 민방위사태로 각종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이 느낄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崔씨는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한 뒤 수시로 주민과 함께 대피소가 열려 있는지 둘러보았다. 전체 19개 시설 중 4~5개를 제외하곤 굳게 잠겨 있었다. 심지어 파출소 뒤에 있는 대피소도 잠겨 있었다.

본지 취재팀의 취재결과 연평도 관할 옹진군청이 첫 지시를 통보한 것은 교전시작 1주일 뒤인 15일. 민방위 대원 및 장비 점검지시였다. 이 지시는 비상연락망 점검 및 면사무소 캐비넷에 쌓아둔 방독면을 세는 것으로 끝났다.

연평면사무소는 이에 대해 "남북한간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방공호는 물론 비상식량까지 점검했다. 인근 군부대와 긴밀하게 연락하며 상황파악에 애썼다. 그러나 주민이 긴장할까봐 경보발령이나 방송은 안했다" 고 말했다.

한편 행자부도 서해교전 직후 백령도.연평도.대청도 주민 6천4백22명을 위한 방독면이 8백28개에 불과하다는 점을 확인하고도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국국방과학연구소 심우섭(沈佑燮)연구원은 "서해교전같은 상황에서 군에는 당연히 대피시설을 열고 방독면도 지급한다.

적어도 이들 섬의 주민 모두에게 방독면을 지급하는 정도의 대처는 있었어야 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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