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하철 '평화비용' 1천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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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는 지난해 연말 서울지하철공사 노사가 대타협을 이뤘을 때 박수를 보냈었다.

강성으로 소문났던 지하철 노조가 인력 감축에 합의하고 '무분규' 를 선언한 것은, 그 자체만

도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우려했던 올 노사 관계를 대화와 타협의 장(場)으로 이끄는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대타협의 이면에는 개운찮은 '금전적 보상' 이 있었다는 보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이번 일이 자칫 다른 공기업 노사협상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본지 보도(2000년 1월 10일자)에 따르면 서울지하철공사 노사 합의에는 임금 12% 인상과 무더기 승진.특별 격려금 등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드는 돈은 최소 4백억~5백억원, 많게는 1천억원으로 추정됐다.

물론 우리는 지하철 노조의 변신이 전적으로 이런 보상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지하철 노조는 이미 지난해 온건노선을 내세운 배일도(裵一道)위원장을 뽑았고, 강경 투쟁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또 "노사 대립이 한국의 신인도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강경 투쟁의 선봉인 지하철노조가 바뀐다면 이 정도 코스트는 감내할 수 있지 않으냐" 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이번 타협이 자칫 '돈잔치' 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과, 원칙을 깬 타협이 가져올 파장이다.우선 임금인상률 12%는 올 공기업 가이드라인(5.5%)을 훨씬 웃돈다.

2조7천억원의 빚과 적자로 허덕이는 지하철에 타당한 인상인지 묻고 싶다.

경쟁관계인 도시철도공사와 맞춘 것이라지만, 생산성 등을 따져본 것인지도 의문이다.

더군다나 지하철은 지난해 서울시 산하 6개 공기업 경영성과 평가에서 꼴찌를 차지, 1위인 도시철도보다 인센티브를 97%포인트 적게 받았다.하지만 이번에 특별격려금으로 차액을 사실상 보전해 줌으로써 이 원칙도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파업 한번 안했고 올 임금까지 동결키로 했던 도시철도 노조 일각에서 '우리만 손해 아니냐' 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하철 공사가 내놓기로 한 돈은 바로 세금.요금 인상 등 시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올릴 것은 올리되 형평과 균형에 맞지 않는 부문은 지금이라도 감축해야 한다.

합리적 인상과 노사화합으로 지하철을 타는 시민들이 편해질 수 있다면 이 정도 인상은 비싼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이번 타협이 총선을 앞둔 노조 무마용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면, 김정국(金正國)공사사장과 서울시측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 이번 사태가 다른 공기업의 불만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설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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