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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옛 장수들의 화신인가, 뿔이 부딪치고 모래가 튄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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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호 18면

가을 풀 밭갈이 하지 않아 목동들 한가한데
기운 센 황소 힘을 내어 산처럼 떨쳐 일어나네.
어지러이 뿔을 맞대고 부딪치며 싸우니
뛰어난 제나라 군대 연나라를 쳐부수고 오는 듯하구나.

112년 맞은 진주 소싸움 전국서 모인 牛公들 혈전

1909년 경남일보 주필이던 위암 장지연은 ‘진양잡영(晋陽雜詠)’이란 시에서 진주 소싸움을 이렇게 묘사했다. 시의 끝에는 부연 설명도 달았다. “이곳에서는 소싸움 놀이가 매우 왕성해서 수많은 소떼들이 크게 떨쳐 나가 부딪치게 되면 그 뛰어오르고 포효하는 모습이 진실로 일대의 장관이었다.” 위암은 진주 남강 백사장에서 벌어진 소싸움을 보고 크게 감동했던 것이다.

오늘날 경남 진주와 경북 청도 등지에서 성행하고 있는 소싸움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 기념잔치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고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잡아 먹힌 소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시작했다는 속설도 있다. 그러나 위암이 읊은 것처럼 농경 문화가 정착될 무렵 목동들이 망중한을 즐기기 위한 놀이로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진주 소싸움의 전성기는 19세기 말이었다. 초파일과 칠석날, 추석에 정기적으로 대규모 대회가 벌어졌다. 특히 추석에 벌어진 대회에는 인근에서 수만 명의 구경꾼이 운집해 지방 농민의 으뜸 오락이 됐다고 한다. 1897년 진주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우승 소에게 상금을 수여하는 등 대회의 틀을 갖추었는데 이것이 올해로 117회를 맞는 진주 민속소싸움의 기원이 됐다.

초기에는 소의 크기에 상관없이 힘과 기술로 한판 승부를 겨루었으나 요즘은 체급을 구분한다. 600㎏부터 821㎏ 이상까지 여섯 체급으로 나누어 경기를 진행하고 우승 소마다 400만~600만원의 상금을 준다. 싸움 기술도 뿔치기·머리치기·배치기·목치기·옆치기·뿔걸어 당기기 등으로 부른다. 올해는 신종 플루 탓에 대회가 늦어지긴 했지만 전국의 이름난 싸움소 294마리가 진주 판문동 전통 소싸움경기장에 모여들어 대규모 대회로 열렸다. 경기는 5일 시작해 10일까지 계속된다.

사진은 7일 오후 벌어진 경기에서 일반갑종 체급(751~820kg)의 이무기(오른쪽)와 양전이 혈투를 벌이는 모습이다. 이무기는 8분에 걸친 대결 끝에 양전을 물리쳤다. 이날 경기장에는 1만7천여명의 관중이 운집해 소싸움을 즐겼고 송아지 등 푸짐한 경품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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