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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 남자는 과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9호 04면

인간과 삶을 제약하는 근본 요소인 시간은,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주요 모티브가 됐다. 시간을 거스르거나 앞서 가는 ‘타임머신’은 SF적 상상력의 출발이 됐다. 앞을 향해 가는 시간 개념을 흔드는 ‘비선형적’ 영화들도 쏟아졌다. 현재에서 과거로 가고, 그렇게 달라진 과거 때문에 미래가 바뀌며 뒤섞이는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들이다.

우리 영화 ‘동감’이나 ‘시월애’처럼 서로 다른 시간대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똑같은 시간(하루)이 무한 반복되는 ‘공포스러운’ 설정도 등장했다. 실제로는 앞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일방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이, 그 한계를 뛰어넘거나 비트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인기리에 개봉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시간을 주된 모티브로 한, 가장 인상적인 사랑영화였다.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져 아이가 돼 버리는 남자와 그를 평생 사랑한 여자의 얘기다.

새 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도 이 계보다. 사랑과 시간, 보다 정확히는 시간여행을 결합시켰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여행을 반복하는 헨리(에릭 바나). 32세의 몸으로 과거로 간 여행에서 6세의 클레어를 처음 만난 그는, 다음 번 시간 여행에서 28세의 몸이 돼 20세의 클레어(레이철 맥애덤스)와 재회한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지만 예고 없는 시간여행이 반복되고 드디어 피할 수 없는 안타까운 순간이 찾아온다.

2003년 미국과 영국에서 출간돼 500만 부가 팔려 나간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독창적인 러브 스토리라는 평을 받은 원작을, 브래드 피트가 제작자로 나서 판타지 감성 멜로로 완성했다. 피트는 시간여행자의 운명을 타고난 우수 어린 헨리 역으로 ‘트로이’에 함께 출연했던 에릭 바나를 점찍었다.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을 꿈꾸거나, 혹은 사랑하는 이의 과거와 미래까지 송두리째 알고 싶을 때 떠올림 직한 상상력의 이야기다. 물론 어디로 갈지 모른 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시간여행이나(스트레스를 받으면 더욱 자주 시간여행을 하게 된단다), 하필이면 꼭 알몸으로 내던져져 경찰에 쫓기는 곤욕을 치러야 한다는 점만을 뺀다면 말이다.

평생을 기다리는 여자, 어디론가 떠나지만 늘 그녀에게 돌아오는 남자의 이야기. 암만 판타지 시간여행이라도 아귀가 안 맞는다고 불평할 관객도 있겠다. ‘벤자민 버튼…’만 한 감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계절 분위기에 맞게 적당히 애잔하고,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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