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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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4) 새옹지마 징조

최형섭(崔亨燮.80.포항산업과학연구원 고문)과기처장관은 몹시 화가 난 얼굴로 옆에 서 있던 전상근(全相根.73.전 청도주택 회장)과기처 종합기획실장을 쳐다봤다. 순간 全실장은 불똥이 자기에게 튀는 줄 알고 잔뜩 긴장했다.

崔장관이 "청와대 보고는 언제까진가?" 라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나에 대한 격한 감정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全실장은 얼떨결에 부동자세를 취한 채 "내일까지입니다" 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崔장관의 불편한 심기가 몹시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崔장관은 나를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레이저 프로젝트안(案)은 군사 기밀이므로 과기처에 제출할 수 없다' 며 완강히 버틴 나를 더 이상 상대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崔장관은 다시 全실장을 쳐다봤다. 全실장은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계속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崔장관은 단호한 목소리로 "그러면 ADD쪽은 빼고 보고하라" 고 지시했다.

ADD를 제외한 한국과학원(KAIS).원자력연구소 등 나머지 레이저 연구기관들이 과기처에 제출한 연구계획서를 종합, 청와대에 보고하라는 얘기였다. 요컨대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할 레이저 프로젝트에 ADD가 참여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과기처가 레이저 프로젝트에 관한 종합계획서를 청와대에 제출한지 일주일쯤 됐을 무렵, 김병원(金昞源.71.한국화낙 상임고문)대통령 과학기술담당 비서관이 내게 전화를 했다. 청와대에 빨리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이때가 76년 6월 중순경이었다.

나는 ADD 소속이라 방위산업을 담당하고 있던 대통령 경제2비서관들과만 접촉했지 그와는 전혀 일면식도 없었다.

서둘러 청와대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그는 다짜고짜 "韓박사, 레이저 프로젝트에 관한 ADD안을 왜 아직까지 제출하지 않는 겁니까" 하고 내게 다그치듯 묻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께 보고할 종합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ADD안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金비서관에게 일단 내 생각을 털어 놓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이번 레이저 프로젝트건(件)은 청와대에서 최종 결정할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는 가급적 차분하게 평소의 소신을 얘기했다.

"레이저 프로젝트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개발이 가능한 레이저 거리 측정기부터 시작한 다음 개발이 어려운 레이저 무기들을 하나씩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무기는 종합기술의 결정체입니다. 자주국방 측면에서도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레이저 무기를 개발하는 게 시급합니다. 이럴 경우 비용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

金비서관의 표정을 살펴 봤더니 매우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 주장에 공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도 한층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목소리를 조금 높여 설명을 계속했다.

"우리나라 경제 여건상 레이저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손 대는 것은 무리입니다. 설령 재원은 국가에서 마련한다 하더라도 현재 레이저 연구를 할만한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또 우리 과학계에서 거의 다 알고 있는 기초 연구부터 시작한다면 밤낮 기초 연구만 하다가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

여기까지 얘기한 다음 잠시 말을 멈췄다. 평소 하고 싶은 얘기를 한꺼번에 쏟아 놓느라 나도 모르게 흥분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金비서관은 내게 "계속 말씀 하시라" 고 요구했다. 내 말에 흥미를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결론을 얘기했다.

"학문의 기초를 하나씩 다져 나가기 위해서도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선정해 단계별로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술자립도 가능합니다. 제가 '개발 가능한 레이저 무기부터 만들어야 한다' 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

속이 다 후련했다. 우연찮게 청와대 담당자에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도 내게는 행운이었다. 金비서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글=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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