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전 시계 되살릴 땐 소우주 재창조하는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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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를 복원하는 것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시계 복원’은 낯설다. 전 세계 3대 시계 복원가 중 한 사람인 미셸 파르미지아니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1950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그는 기계공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금속수공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시계 학교와 마이크로 기계공학과 졸업 후, 75년부터 시계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10년 전부터는 산도즈 재단의 후원으로 ‘파르미지아니 플레리어’라는 최상위 고급 시계 브랜드를 설립, 시계 제작 전 과정을 지휘하고 있다.

-‘시계 복원’은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나

“복원은 처음 만들어진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명력을 찾아주는 작업이다. 설계도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전적으로 복원가의 능력에 달렸다. 이 때문에 복원가는 금속 벽시계가 처음 만들어진 16세기부터 현재까지 450년 간의 문화와 역사를 모두 공부해야 한다. 시대별로 시계 제작의 원칙과 트렌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계는 음악, 미술, 천문, 세공, 조각, 화훼 등 모든 종류의 문화가 집결된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피보나치 수열, 다빈치의 황금비율 등 기하학과 수학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꽃과 나무 같은 모든 자연은 완전한 ‘비율’과 ‘균형’을 갖고 있다. 나는 시계를 복원할 때도, 새로운 시계를 디자인할 때도 언제나 이 두 가지 개념에서 출발한다. 서로 다른 건축가의 건물이 외형이나 소재에서는 다르지만 결국 당대가 요구하고 인정한 미학에 근거해 비율과 균형감을 갖게 된다. 시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내가 디자인한 파르미지아니 플레리어의 시계들은 모두 동일한 옆면(프로파일. 6면 참조)을 갖고 있다. 러그와 시계 원판을 용접해서 3:4:3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미적으로나 인체공학적으로 가장 편안한 비율이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복원 작품

“최근 파텍 필립 사 박물관에 소장된 시계를 복원했다. 꼬박 1년이 걸렸다. 하나에 매달리면 보통 1800~3000시간이 걸린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밀라노 스포르지스크(SFORZESCO) 박물관에 있는 ‘태양행성 천문 시계’다. 1817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말 그대로 소우주를 내가 재창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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