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이창호-창하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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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가시밭길 걷던 李9단 黑실착으로 호기

제5보 (66~88)〓온순한 성격의 창하오는 李9단보다 한살 어린 76년생. 그가 8년 연상의 누님 같은 장쉬안(張璇)8단과 결혼한 것은 기가(棋街)의 화제였다.

조치훈9단도 연상의 여인과 결혼했고 특히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9단은 13년 위의 '선생님' 과 결혼했다. 이들은 대체로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고 또 바둑에만 매진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상처한 뒤 내리막 길을 타던 고바야시가 30대의 젊은 여성과 재혼한 뒤 최근 5관왕에 올랐다. 이것도 창하오의 결혼 얘기와 함께 프로기사들 간의 화제였다.

판은 험악한 가운데 흑이 기선을 쥐고 있다. 온순한 창하오지만 바둑판 위에선 싸움을 아주 잘한다. 유명한 싸움바둑 조훈현9단도 한번 허리가 부러진 일이 있다.

79는 강인하다. 천하의 이창호 앞이지만 그는 자신의 완력을 믿고 있다. 81도 교묘한 맥점이라서 무표정한 李9단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때 83의 실착이 등장한다. 이 바람에 85의 근사한 맥점이 빛을 잃었다.

83은 꼭 아껴둬야 할 선수. '참고도' 처럼 그냥 흑1에 두었으면 백이 곤란했다. 실전과 똑같이 진행될 경우 흑5, 7로 벼락총소리가 난다.

다시 말해 백은 실전처럼 86으로 끊는 수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가시밭길의 고통 속에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던 李9단이 88을 놓으며 모처럼 허리를 쭉 폈다. 이젠 A와 B가 맞보기.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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