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에게 누군가 물었다.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손을 잡아 구하는 것은 남녀의 예절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맹자의 대답은 이랬다. “예절도 좋지만 형수가 물에 빠진 상태에서는 손을 내밀어 구해야 한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너무나 뻔하지만 당시에는 퍽 진지한 문답이었던 모양이다.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고(守信), 여성인 형수의 손을 잡지 않는 것(男女不親)은 유가(儒家)의 원칙이다. 이를 ‘경(經)’이라고 부른다. 베를 짜는 데 필요한 축선의 뜻에서 출발한 이 경이라는 글자는 ‘허물지 않는 원칙’이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원리와 원칙이 모든 상황을 다 아우를 수 없다.
다리 밑에서 물이 불어나면 일단 피하는 게 옳다. 형수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손을 내밀어 건지지 않는다면 그는 짐승이지 사람이 아니다. 이 경우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글자로 적자면 ‘권(權)’이다. 저울추를 의미했던 이 글자는 나중에 상황의 경중을 가려 대처한다는 뜻으로 진화했다.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차원에서는 상황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경이라는 원칙, 현실의 응용적 측면인 권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사람과 사회가 편안하다. 유가에서 꽤 오랫동안 논의를 해 온 개념이다.
세종시로 정부 기능 일부를 이전하는 데에는 아직 반대 목소리가 많다. 그런 점에서 세종시 결정은 제대로 세운 원칙이 아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다리 밑의 남자, 미생의 모습이 역력하다.
옳은 원칙이 아니라면 허물고 다시 세워야 한다. 수도 기능 이전은 국가 백년대계다. 100년 뒤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을 상정해 원칙(經)을 세우고, 충청도인의 숙원을 감안해 현실의 방도(權)를 마련하는 게 순서다. 정부 방침을 토대로 원칙과 현실이 조화를 이루는 세종시안이 다시 나오기를 기대한다.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