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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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2) 청중앞의 거짓말

오네스트 신은 잠시 답변을 주저했다.

나는 그가 왜 답변을 주저하는지 그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레이저를 사용해 핵융합이 일어나도록 할 자신이 있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당연히 레이저로 투입한 에너지의 양보다 핵융합으로 나온 에너지의 양을 많게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 전 나와 단 둘이 이야기할 때는 "그런 기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고 솔직히 대답했었다.

그는 청중과 나를 동시에 의식하는 듯 했다.

만약 '기술 개발이 안됐다' 고 대답하면 이제껏 레이저 핵융합을 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이 거짓이 되고 반대로 '기술 개발이 됐다' 고 대답하면 내 앞에서 한 말이 허위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래저래 거짓말을 하는 셈이 돼 버렸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진 것이다.

그의 얼굴에 곤혹스런 빛이 역력했다.

그런데 약 10여초가 지났을까. 이윽고 그가 입을 열더니 "최근에 기술이 개발됐다" 고 말하는 게 아닌가! 불과 1시간 여만에 내 앞에서 한 말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이 친구는 엉터리' 라고 결론지었다.

미국의 최대 원자력연구소인 로렌스 리버모아를 비롯, 로체스터 대학의 레이저 핵융합연구소 등 세계적으로 유수한 연구소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것을 '마치 개발이 끝난 것' 으로 말하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가 추진하는 레이저 프로젝트를 성사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당시 물리학계도 같은 생각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상수(李相洙.74.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박사였다.

李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영국 런던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원자력연구소 소장과 한국과학원(KAIS)원장을 지낸 우리나라 레이저 분야의 대부(代父)였다.

李박사는 레이저 핵융합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오네스트 신의 주장에 대해 "턱 없는 소리" 라고 일축했다.

이어 그는 "하버드대 박사라는 간판을 내세워 우리 과학계를 우롱하는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된다" 고 분개했다.

그러나 오네스트 신이 추진하고 있는 레이저 프로젝트를 무산(霧散)시키기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과학계의 실력자인 최형섭(崔亨燮.79.포항산업과학연구원 고문)과기처 장관이 그의 계획안에 매우 호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과기처는 그의 계획안을 토대로 레이저 연구 기관의 의견을 모아 거국적인 레이저 프로젝트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76년 5월 말 홍릉에 있는 한국과학원(KAIS) 회의실. 내가 몸담고 있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비롯, 원자력연구소.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등 레이저 연구기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사회를 맡은 과기처의 전상근(全相根.72.전 청도주택 회장)종합기획실장이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레이저 프로젝트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레이저 연구는 거국적 프로젝트로 추진할 예정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초 연구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합니다. 각 기관에서는 어떤 기초 연구를 할 것인지 빠른 시간내에 계획서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

全실장의 이같은 발언은 곧 崔장관의 견해이자 오네스트 신이 제시한 레이저 프로젝트의 방향과도 일치했다.

그러나 나는 이 방향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기술개발이 뒤진 상황에서는 현장에서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수행하면서 기초연구를 하나씩 다져나가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부터 착수해야만 했다.

나는 즉석에서 발언권을 신청했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회의 내내 별다른 반론 없이 순탄하게 진행됐던 터라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하는 눈치들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 한필순 원자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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